건강검진 레드썬
매년 받던 기본 검진 대신, 이번에는 종합검진을 신청했다. 옷을 갈아입고 복도에 들어서자 모두들 똑같은 황토색 환자복을 입고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 모습 속에 앉아 있는 나 역시 어느새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제품 중 ‘하나의 제품’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복도는 황토색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이곳저곳으로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정해진 순서를 따라 움직이는 행렬 같았다. 저 많은 검사를 언제 다 받을 수 있을까 싶다.
1. 우주선 간접 체험, MRI
시력검사와 엑스레이를 마치고 MRI 차례가 되었다. 둥근 통 안으로 들어간다. 자석으로 검사한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막상 들어가니 전기가 온몸을 관통하는 느낌이다. 혈류가 자기장에 따라 일렬로 정렬되어 사진이 정확히 찍힌다고 했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라고 하니, 시끄러운 소음을 참아낸다.
기계가 팽글팽글 돌며 내는 소음은 마치 우주선 발사 직전 같다. 조만간 은하계라도 날아가야 하나 싶을 정도다. 아직 의료 기술은 이 거대한 소음까지 잡아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은하계를 한 바퀴 돌고 온 듯한 큰 소음 뒤에,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2. 프로포폴 내시경
내시경에 관한 사전 설명을 듣다 보니 기사에서 많이 보았던 그 프로포폴이란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다른 환자들이 검사를 마치고 나온다. 마치 도마 위 고기처럼 치료실에서 회복실로 이리저리 실려간다. 아예 정신을 잃은 채 침대째 움직이는 모습이 처연하다.
내 차례가 불린다. 하얀 침대에 눕는다. 투명한 주사기에 하얀 액체가 그득하다. 저 녀석이 바로 프로포폴이구나. 내시경 준비를 마치고 혈관으로 천천히 투입된다. 이러다 마취가 안 되면 어쩌지? 의식이 깨어있는 채로 검진을 받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잠시, 어느새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나를 마주한다. 어느새 검사는 다 끝나있었다.
팔에 붙어 있던 주사 바늘은 진작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런 기억이 없다. 이래서 운전을 하지 말라 했나 보다. 마치 술을 한 잔 걸친 듯 비틀거린다. 자꾸만 바닥이 친구를 하자며 다가온다. 사람들은 이런 약을 잠이 오지 않는다며 복용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안쓰럽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아프지 않은 것이 최선이고,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잠깐은 다짐하지만, 내일이면 또다시 기름진 음식과 술을 가까이하겠지.
황토색 환자복을 벗고 원래 옷을 입는 순간, 마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잠시 기계의 톱니바퀴 속을 거쳐 나온 뒤, 다시 나다운 일상으로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