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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바라보는 AI가 가져올 미래

Ai라는 노예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고대 로마를 떠올릴 때면, 햇빛에 반짝이는 대리석 기둥과 시민들이 느긋이 광장을 거니는 장면이 먼저 스친다. 그러나 그 화려한 풍경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존재했다. 수많은 노예의 노동이 있었기에 로마라는 거대한 도시가 숨 쉬고 움직일 수 있었다. 노예들의 땀이 있었기에 소수의 귀족은 육체의 노동에서 해방되어 정치와 철학, 전쟁과 법률, 도시의 운명을 결정만을 고민하며 살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로마가 다시 열리는 문턱에 서 있다.


인공지능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노예가 아니며, 지침을 받들되 피로를 모르고, 필요에 따라 무한히 복제되며, 반란을 일으킬 여지도 없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무제한의 노동력’이 주어진 순간이다. 로마의 노예제도가 혈연과 전쟁으로 제한된 희소 자원이었다면, AI는 그 한계를 완전히 초월한 존재이다.


로마 귀족이 육체노동을 멀리했던 까닭은 게으름이 아니었다. 노예가 모든 물질적 노동을 떠안았기에 그들은 오직 판단하고, 설계하고, 결정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오늘날 AI 역시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복잡한 계산, 방대한 자료 정리, 반복되는 행정 업무를 순식간에 처리함으로써 인간에게 남겨진 것은 점차 ‘생각하는 일’, 나아가 ‘결정하는 일’뿐이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 상실이 아니라, 인간을 보다 높은 차원의 책임으로 끌어올리는 변화이다.


그러나 로마에서 모든 시민이 귀족이 된 것은 아니었다. 노예를 많이 소유한 가문만이 더욱 부유해졌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영원히 계층 사다리 아래에 머물렀다. AI 시대 역시 그 격차를 반복하고 있다.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자는 시간을 절약하고 더 큰 그림을 그릴 여유를 얻지만, AI를 두려워하거나 외면하는 자는 더욱 바빠지고 지치며 뒤처진다.


이제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AI를 부리는 자인가, AI에 의해 부려지는 자인가?”


로마 후기, 시민들은 정치에서 멀어졌다. 노예경제가 팽창할수록 노동의 생각은 약해졌고, 국가는 빵과 서커스로 불만을 잠재웠다. 오늘날 무한히 재생되는 콘텐츠, 알고리즘이 대신 선택하는 취향, 버튼 하나로 해결되는 편리함은 그 연장선에 있다. 편안함 속에 스며드는 허전함은 우리가 서서히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로마와 다르다.

AI는 복제 가능하고, 한계 비용이 0에 수렴하며, 누구나 원한다면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기술이 소수의 특권으로 굳어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어떤 규칙을 세우고, 어떤 가치를 우선할지 선택한다면, 모든 사람이 귀족과 같은 여유를 누리는 세상도 가능하다.


AI가 늘어날수록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더욱 성숙한 자유, 더욱 책임 있는 선택이다. 무엇이 진정 소중한지, 어떤 가치를 지켜낼지, 더 나은 세상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결코 AI가 대신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지금, 로마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살고 있다.

그 문을 어떤 방식으로 열 것인지,

우리가 귀족처럼 창조적으로 살 것인지,

서커스에 만족하는 시민으로 머물 것인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지는

오직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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