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 보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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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한 번 중산층 기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며칠 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이 질문이 나왔다. “요즘 중산층이면 최소 10억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강남 아파트가 100억인데, 10억도 중산층이라 하기 어렵지.”
언론은 매일 누군가가 빌딩을 수십억에 팔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이미 10억 원을 훌쩍 넘었다. 이 풍경 속에서 ‘중산층=10억’이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통계청은 전혀 다른 말을 한다. 우리나라 중산층 기준은 약 2.5억 원이라고. 이 숫자는 어디서 나온 걸까?
평균은 누구의 평균일까?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25년 3월 말 기준 가구의 평균 자산은 5.7억, 부채는 0.95억, 그래서 순자산은 4.7억이다. 7천4백만원이고, 처분가능소득은 6천만원이란다. 자산도 늘었고, 소득도 늘었다. 숫자만 보면 모두가 조금씩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존재하지 않는 평균 '가구'
문제를 이해하려면 분위별 자료를 함께 봐야 한다. 우리나라 가구를 자산 기준으로 줄 세워 정확히 가운데에 놓인 가구, 즉 40~60% 구간(P50)의 순자산은 약 2억 4천만 원이다.
반면 통계에서 말하는 평균 순자산 4.7억 원은 실제로는 20~40% 구간(4분위)의 평균값에 가깝다.
즉, 2.4억은 정확히 가운데 가구의 값이고, 4.7억은 이미 상위 약 30%에 가까운 가구의 값이다. 그렇게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평균 가구’는, 사실상 중간보다 꽤 위에 있는 가구의 모습이다.
자산 증가는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
분위별 순자산 증감을 보면 격차는 더 분명해진다.
하위 1분위는 순자산이 오히려 67만 원 감소했다. 2·3분위는 정체 또는 소폭 감소한 반면, 상위 20% (5분위)는 1억 원 이상 증가했다.
자산은 늘었지만, 그 증가분은 거의 대부분 상위 계층에 집중됐다. 중간 이하 구간은 제자리에 있거나 뒤로 밀렸고, 중간 이상 구간은 더 빠르게 앞서 나갔다.
‘자산이 늘었다’는 말은 누구의 자산이 늘었는지를 묻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계층을 한 칸 올라가는 데 필요한 재산
10분위 상세 자료를 보면 규칙이 보인다.
40% → 50% 구간, 50% → 60% 구간으로 이동하려면 직전 구간 자산의 약 1.5배가 필요하다.
그런데 하위로 내려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0% → 20%로 올라가려면 약 4배, 20% → 30%로 가려면 다시 2배
절대 금액은 상위로 갈수록 크지만, 비율 기준으로 보면 하위 계층일수록 ‘한 칸 위’로 가기가 훨씬 어렵다.
계단의 높이가 아래로 갈수록 더 가파른 구조다.
소득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가구 소득 역시 비슷하다.
중간값(P50)은 5,680만 원 → 5,800만 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분위 이동을 보려면 증가율을 봐야 한다.
중간에서 한 단계 위로 가려면 최소 20% 이상의 소득 증가가 필요하다. 하위 구간으로 갈수록 필요한 증가율은 더 커진다.
소득 증가 속도 역시 상위 분위가 훨씬 빠르다. 비율 기준으로 보면 상위와 하위의 증가 속도 차이는 1.5배 이상이다.
통계가 말하는 ‘중간값 2.5억’은 부유함의 기준이 아니라, 위치의 기준이다. 잘 산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가운데에 서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문제는 우리가 체감하는 세상이 이미 그 가운데보다 훨씬 위의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집값, 소비 기준, 교육비, 노후 자금. 모두 최소 상위 20퍼센트 가구의 생활 수준을 기준으로 형성된다.
그래서 통계상 중산층은 현실에서 늘 부족해 보인다.
숫자상으로는 평균이지만, 체감은 언제나 아래쪽에 머문다.
결국 ‘중산층’이라는 말은 잘 살아왔다는 증명이 아니라 내가 어느 줄에 서 있는지를 알려주는 표식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표식을 보며 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자기 기준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평균은 늘 멀게 느껴지고, 중간에 있어도 마음은 좀처럼 편해지지 않는다.
중산층이라는 말은 어쩌면 처음부터 위로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도, '여기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도 모두 진짜다. 단지 그 불안과 안도가 같은 곳을 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