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는 돌고 돈다.

복수의 유혹과 그 끝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차가 끼어든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치민다. 핸들을 꽉 쥔 채 가속 페달을 밟고 싶은 충동이 인다. ‘저 녀석, 너도 똑같이 당해봐라.’ 그런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속도를 줄이고 한 템포 쉬어간다. 왜냐하면 그 끝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저 차를 쫓아가서 보복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저런 사람은 언젠가 자기보다 더 미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게 물리적인 피해일 수도 있고, 경찰일 수도 있고, 가드레일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난폭운전을 하던 차들이나 아슬아슬하게 끼어들던 차들은 결국 어딘가에서 사고를 낸다. 내가 보복하지 않아도 그들보다 더 무모한 운전자가 나타나 그들을 멈춰 세운다. 이건 도로 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과거 상속세 조사를 하면서 나는 이런 ‘카르마의 업보’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감한 건 사망 이후에야 드러나는 과거의 업보들이었다. 몇 년 전 수백억 대 자산을 남긴 한 기업 대표의 상속세 조사를 하고 있었다. 조사 도중 대표의 배우자가 소명자료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30년을 넘게 함께 산 부인이었다.


“조사관님, 제가 몰랐던 계좌들이 너무 많아요. 이 여자 이름으로 보낸 돈은 뭡니까?”


자료에는 10년 넘게 매달 생활비가 송금된 기록이 이어져 있었고, 수령자는 인근에 사는 여성이었다. 조사 결과 대표는 이중생활을 하며 그 여성에게 생활비를 대고 집까지 사주고 있었다.


“저 여자 때문에 제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게 용납할 수 없어요.”


세법상 그 여자가 받은 돈에는 그 여자가 증여세를 내게 되지만, 그 돈은 다시 상속재산에 합산되었고 결국 배우자와 자녀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상속세가 생겼다. 그 금액만 해도 수억 원이었다.


나는 잠시 배우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름이 가득한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마른 손이었다. 평생 가정을 지키느라 고생한 손이었다. 그 손이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복수심으로 떨리고 있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수없이 보아온 결말들을 떠올렸다.


“복수는 독약과 같습니다. 상대방을 죽이려고 마시지만 결국 죽는 건 자기 자신입니다. 제가 본 케이스들 중에 복수로 시작해서 행복해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그 여자에게 과세할 수 있는 증여세를 끝까지 찾겠습니다. 사모님께서 하실 일은 탈루된 부분이 있다면 자료를 제출하시는 것까지입니다. 그 이상은 사모님의 인생을 망칩니다.”


이 말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경고이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는 다른 세무조사에서도 있었다.

몇 년 전 또 다른 부동산 투기꾼을 조사한 적이 있다. 수백억 대 자산가였고, 세금은 최소한으로 내면서 온갖 편법으로 재산을 불린 사람이었다. 그는 동업 과정에서 상대를 무시했고 짓밟았다. 그 동업자는 깊은 분노를 품었다. 그래서 그는 해외에 정보를 팔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돈 많은 사람이 필리핀이나 동남아로 다니는 동선을 파악해 현지 조직과 연결하면 ‘사고’를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CCTV가 많고 법망이 촘촘하지만 해외는 다르다. 돈만 있으면 가능한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동업자였던 그는 그런 모든 상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왜냐하면 그런 나쁜 카르마는 반드시 자신에게, 아니면 자신의 아이에게 돌아온다는 걸 그 역시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부동산 투기꾼은 해외 사업에 실패해 수백억 원을 잃었다. 누군가 나서지 않아도 카르마는 그를 정확히 찾아갔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복수는 당신의 인생을 망친다. 그러니 카르마에게 당신의 복수를 맡기라고. 내 아이들이 자라 언젠가 누군가를 미워하게 될 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복수하지 마라. 그건 네 인생을 망치는 일이야.”


하지만 내가 복수를 했다면, 내가 악업을 쌓았다면 나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기억하지 않는다. 부모의 행동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끼어드는 수십 대의 차를 그냥 보내준다. 나를 조롱하거나 배신한 사람들에게도 감정이 아니라 법으로만 집행했다. 개인적인 분노로 더 세게 조사하지도 않고 복수하려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알기 때문이다. 카르마는 내가 나서지 않아도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내가 쌓은 나쁜 카르마는 언젠가 나에게, 내 가족에게 돌아온다는 걸. 복수는 쉽고 참는 건 어렵다. 하지만 어려운 길이 대개 옳은 길이다.


오늘 누군가를 증오하고 있다면 한 번만 생각해 보라. 그 증오가 당신의 인생에 무엇을 더해주고 있는지, 복수가 당신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지. 대답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복수는 당신을 증오의 덫에 가두고, 그 덫은 당신의 아이에게까지 대물림될 수 있다. 그러니 놓아주라. 카르마에게 맡겨라. 우주는 당신보다 훨씬 공정하고 훨씬 정확하게 계산한다. 그러니 당신의 마음에서 미움과 증오를 잠시 내려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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