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아직 ‘대충’을 모른다

세무 자문, 아직 AI가 넘보기 어려운 ‘어림짐작’의 영역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대충 얼마나 나와요?”


세무 상담 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질문이다.
고객들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도 좋으니, 대략적인 규모라도 알고 싶어 한다. 예산을 세워야 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이, 요즘 가장 똑똑하다는 AI에게는 유난히 어렵다.

법리 판단처럼 구조가 명확한 영역에서는 AI가 오히려 답을 잘 내놓는다. 판례와 법조문을 분석해 “이런 경우 유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은 “무죄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경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영역에서 AI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세금이 얼마나 나올지를 예측하는 문제는 조금 다르다. 세액을 계산하려면 세율, 비용, 공제 항목, 감면 조건, 연도별 개정 및 유예 조치 등 수많은 변수가 필요하다. 거래 구조가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는 완전히 바뀐다. 변수 하나만 빠져도 계산은 멈춘다. 그래서 AI는 이 질문 앞에서 “정보가 부족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반면 사람은 다르게 접근한다.
오랜 시간 세무 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는 통계적으로 안다.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이 정도 규모라면 대략 어느 선에서 움직인다는 감각. 그 감각은 계산으로 생기지 않는다. 여러 건의 틀린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다.


물론 정확하게 맞을 확률은 높지 않다. 어쩌면 틀릴 가능성이 더 크다. 그건 어쩌면 허공에 화살을 쏘는 일에 가깝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화살을 원한다. 과녁을 맞히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느 방향으로 날아갈지는 알고 싶어 한다.


“정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대충만 알려주세요.”


고객이 원하는 것은 엑셀에 입력할 숫자가 아니다.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대략적인 규모다.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도 과거에 기대어 범위를 짐작해 보는 것. 이런 ‘어림짐작’은 계산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경험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인간 세무 전문가의 영역이다.


물론 AI는 모든 변수가 주어지면 정확한 답을 낸다. 하지만 변수가 빠진 순간, 가장 먼저 멈춘다.


세무가 아직 사람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정확한 변수가 아닌 ‘대충’이라는 말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AI가 이 ‘대충’을 이해하게 될까?
그날이 온다면, 그것은 AI가 더 똑똑해진 순간이 아니라 비로소 인간처럼 불확실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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