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건물주라는 말의 함정
상가 건물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그는 몇 년째 임대료를 올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착한 건물주’라고 부른다. 임차인들도 고맙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좋은 일 하고 있는 거 맞지?” 친구의 질문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건물은 결국 월세로 평가된다.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다. 월세가 시세에 맞게 나와야 건물도 제값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착한 마음으로 임대료를 묶어두면 건물의 가치는 서서히 내려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의가 자산을 갉아먹는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말한다. “임대료 안 올리는 게 미덕이다.” 과연 그럴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낮은 임대료는 정말 임차인을 위한 걸까? 혹시 더 나은 자리로 옮길 기회를 조용히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새로운 도전을 미루게 만드는 편안한 핑계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은 때로 조금의 압박 속에서 성장한다. 지나친 배려는 안주를 합리화해 주기도 한다.
더 씁쓸한 이야기도 있어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한 건물의 연간 임대료가 8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건물주는 매년 관리와 보수에 1억 원을 쓴 것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해마다 2천만 원씩 손해다. 그래도 그는 월세를 올리지 않았다. “임차인 생각해서”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 임차인은 그 공간을 잘게 쪼개 재임대했다. 일주일에 몇천만 원을 벌어들였다. 건물주는 적자를 보며 건물을 지키고 임차인은 그 건물로 돈을 벌고 있었다. 직접 장사를 하기보다는 그저 중간에서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게 과연 맞는 걸까?
그 순간 ‘착한 건물주’라는 말이 조금은 잔인하게 들렸다. 선의가 문제라기보다 그 선의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세를 올렸느냐, 안 올렸느냐.”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관계가 공정하냐”가 아닐까?
좋은 임대인이란 무조건 월세를 동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정한 임대료를 받으면서도 임차인과 솔직하게 소통하는 사람 아닐까? 임차인도 마찬가지다. 배려를 받았다면 그만큼 책임 있게 써야 한다. 그걸 돈벌이 수단으로 전용하는 순간, 그건 배신이 된다.
임대료 문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고 관계의 문제다. 선의가 선의로 돌아오고 노력이 이용당하지 않는 관계. 그게 건강한 임대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네가 좋은 일 하는 건 맞아. 근데… 그 사람이 그걸 잘 쓰고 있는지는 한 번쯤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 나는 너의 선의를 믿는다. 다만, 그 선의가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