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길의 사탕

제사상의 옥춘

장인어른의 아버님은 제사상을 두고는 생전에 유독 한 가지를 당부하셨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옥춘은 꼭 올려놓거라.”


장인어른은 제사를 준비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말씀을 떠올렸다. 장인어른은 제사상을 준비하는 장모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보셨다.


“옥춘은 사셨소?”


하지만 장모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요즘 누가 먹는다고 옥춘을 상에 올려요. 그리고 제사상에 사탕이 어디 있어요.”


장모님은 옥춘을 아예 장바구니에 담지도 않으셨다.


장인어른은 못내 서운해하셨다.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 표정에서 아버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이 역력했다. 차라리 사다 놓았는데 놓지 않았다면 다시 올려놓을 수라도 있을 텐데, 아예 준비조차 하지 않으신 것에 장인어른은 더 깊은 서운함을 느끼셨던 것 같다.


제사상을 앞에 두고 내가 과거에 차례를 지냈던 기억대로 대추와 밤을 순서대로 놓자 장인어른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보통은 조율이시라고 대추, 밤, 배, 감 순서로 놓는 게 예법이라고 하지. 하지만 우리 집안은 밤부터 놓는다네. 율조이시지. 집안마다 제사 지내는 방식이 다 다른 거야. 어느 게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각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방식이 있는 거지. 그게 바로 그 집안의 전통이 되는 거고.”


장인어른은 잠시 말을 멈추셨다가 덧붙이셨다.


“자네 장모는 바나나 같은 외래 과일은 절대 올리면 안 된다고 하지. 조선시대에 바나나가 어디 있었겠냐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네.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셨던 거라면, 바나나라도 올려야 한다고 봐. 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자리 아닌가. 그분이 좋아하셨던 걸 올리는 게 정성 아니겠나.”


장인어른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아쉬움이 함께 묻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조선시대에 설탕은 아주 귀한 음식이었다. 제례서 어디에도 옥춘 이야기는 없다. 다만 조청을 조린 당과는 있었지만, 옥춘 같은 사탕은 당시 예법의 범주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예법으로만 본다면 장모님의 말씀은 틀린 게 아니라, 예법에 맞게, 격식에 맞게 제사를 지내고자 하셨을 뿐이었다.


하지만 장인어른의 생각은 달랐다. 조율이시든 율조이시든, 집안마다 내려오는 방식이 다르듯이, 옥춘도 우리 집안의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나나든 옥춘이든, 고인이 좋아하셨던 것을 올리는 게 진정한 정성이라는 것이었다. 전통과 격식, 예법과 현실 사이에서 두 분은 각자의 방식으로 조상을 기리고 계셨다.


옥춘은 1920년대부터 만들어진 사탕이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 사탕 한 알은 작은 사치였고, 큰 기쁨이었다. 명절날 손에 쥐어지던 달콤함, 장날에 다녀온 어른이 슬쩍 내밀던 사탕 한 봉지. 그건 맛이 아니라 기억과 추억이었다.


장인어른의 아버님에게 옥춘은 그런 어린 시절의 한 장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였을 것이다. 저승길을 떠나는 길에, 이승의 달콤함 하나쯤은 손에 쥐여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 당부는 제사 음식에 대한 주문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제사는 누구를 위한 자리일까? 산 사람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일까, 떠난 이를 다시 한번 위로하는 자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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