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흰밥은 달랐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결혼식이나 돌잔치보다 장례식장에 가는 일이 더 잦아졌다. 장례식이 늘었다기보다는, 결혼식이나 돌잔치가 줄어든 탓일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주위 어른들에게 배운 점이 하나 있다. 경사에는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애사에는 가급적 얼굴을 비추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경사는 미리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만, 애사는 늘 갑작스럽다. 특히 긴 연휴에 장례식을 치르게 되면, 알리는 사람도 부고를 받은 사람도 모두 부담스러워진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마주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오래전 외할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며 그 사실을 느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준 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대가를 바라고 가는 자리는 아니지만, 그 마음은 전해진다. 누군가의 장례식에 간다는 것은, 죽음을 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삶을 환기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소중한 사람이 지금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만드는 자리이기도 하다.
며칠 전, 직원 어머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님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연세가 있으시니 아픈 것도 그러려니 하고 큰 병원에 모시지 못했는데, 그 사이 암이 말기까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음식은 거의 드시지 못했고 약만 겨우 넘기시던 상태였다고 했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드시고 싶었던 것이 흰쌀밥이었다고 한다.
장례식장에 가면 보통은 아무 생각 없이 소주나 한 잔 마시게 되지만 그날따라 쌀밥 한 끼를 못 드신 것을 내내 마음에 두고 미안해하던 그 직원의 표정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부모님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먹어오던 흰쌀밥인데, 장례식장에서 마주했던 그날의 흰쌀밥이 유독 다르게 느껴졌다.
예전에,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세 분의 어른을 잃었던 때가 있었다. 인사 이동일에 외할머니를 떠나보냈고, 그로부터 2주 뒤에는 친했던 과장님이 소천하셨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는 처가의 친척 한 분이 세상을 갑자기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넘기려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순이 넘은 어머니가 조용히 물으셨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뭐라 할까?”
어머님이 여쭤보셨던 돌아가신 친척 분의 나이가 일흔이 조금 넘었다고 하셨다. 어머님의 나이로 계산해 보면 어찌 보면 십 년 남짓이었다. 물론 어머니는 그보다 더 오래 사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전적인 영향을 보아도 아흔은 넘기실 듯했기 때문이다. 그저 친척이 떠나간 아쉬움에 어머님이 하신 말이기에 흘려보내고 싶었지만, 쉽게 내 뇌리에서는 흘러가지 않았다.
또 며칠이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살아가겠지만, 오늘만큼은 다짐해 본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