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에서 느껴지는 여행

혼자만의 시간을 채우는 법

70대 어른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던 날이었다.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신다는 이야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는지.


나는 당연히 유명 관광지나 맛집 탐방 같은 답변을 기대했다. 70대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이니, 아마도 그 도시의 명소들을 부지런히 돌아다니시거나,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실 것 같았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 지역에서 하는 쿠킹 클래스에 가요.”


쿠킹 클래스? 순간 의아했다. 평소 요리를 즐기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식사 자리에서 항상 음식보다는 일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던 분이 아니었던가. 내 표정에서 의아함을 읽으셨는지, 그분은 천천히 설명을 이어가셨다.


“그 나라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그 나라만의 방식으로 요리해서 먹어보면 굉장히 색다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이 김치를 직접 담가서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 비유가 묘하게 와닿았다. 김치를 담그는 과정을 생각해 보니,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고, 항아리에 담는 그 모든 과정 속에는 우리 문화와 시간의 지혜가 녹아 있다. 외국인이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한다면, 단순히 김치를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해와 감동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했다. 평소 요리를 즐기지도 않으시는데, 낯선 나라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으신지. 내 질문에 그분은 편안하게 웃으셨다.


“거기는 요리 전문가들이 오는 곳이 아니에요. 대부분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죠.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조금 못해도 전혀 문제없어요.”


생각해 보니 쿠킹 클래스에서 특별한 요리 기술을 요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여행자가 그 나라의 문화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통로였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 그 나라를 눈으로 보는 것이라면, 쿠킹 클래스는 그 나라를 손으로 만지고, 코로 맡고, 혀로 느끼는 경험인 셈이었다.


음식만큼 한 나라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없다. 기후와 지형이 만들어낸 식재료, 역사가 빚어낸 조리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식사 문화까지. 음식 한 접시에는 그 나라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과 방식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여행지에서 음식을 소비할 뿐이다. 레스토랑에 앉아 완성된 요리를 먹는다. 물론 그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다. 하지만 그 음식이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는 보이지 않기에 알 수 없다. 쿠킹 클래스는 바로 그 요리 과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현지 시장에서 식재료를 고르고, 그 지역 특유의 조리 도구를 다루고, 낯선 향신료의 이름을 배우고, 그 나라 사람들이 대대로 사용해 온 요리법을 따라 해 보는 것.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일상을 엿보게 된다. 서툴게나마 직접 만든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여행의 기념품이 아니라 내가 그 문화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된다.


70대 어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여행 방식을 되돌아보았다.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나는 주로 업무에 집중하고, 남는 시간에는 효율적으로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고, 유명한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지만, 뭔가 표면만 훑고 지나간 느낌이 있었다.


나에게 쿠킹 클래스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선택지였다. 평소 요리에 관심도 없고, 한국에서도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 내가 낯선 나라에서 요리를 배운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쿠킹 클래스는 요리 실력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려는 마음가짐이었다.


앞으로 해외 출장에 여유가 생긴다면, 나도 꼭 쿠킹 클래스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태국에서는 팟타이를,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멕시코에서는 타코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 서툴게 만든 음식이 맛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느낄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70대 어른이 여전히 새로운 경험을 찾아 쿠킹 클래스에 참여하신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에 대한 열린 자세,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함, 그리고 여행을 단순한 관광이 아닌 문화적 교류로 만들려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자의 모습이 아닐까.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분은 덧붙이듯 말씀하셨다. 쿠킹 클래스에서는 음식 만드는 재미도 있지만 사람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하셨다. 서툰 손놀림으로 각자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같은 냄비 앞에 서서 웃고 떠든다는 이야기였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늘 혼자 움직였고, 혼자 보고, 혼자 먹었다. 그 나라에 갔다 왔다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다음 출장 일정표를 훑어보다가, 문득 생각이 멈췄다. 유명한 관광지도, 이미 가본 식당도 아닌 그 도시의 주방 한쪽이 떠올랐다.


아마도 서툴게 칼을 잡고, 레시피를 몇 번이나 다시 물어볼 것이다. 음식은 기대만큼 맛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여행이란, 잘 다녀오는 일이 아니라 조금 어색해지는 경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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