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주는 곳이 없다

나이가 아니라, 나눌 이야기가 사라질 때 사람은 멀어진다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장례식장에 가면 요즘은 90살, 100살 어르신들의 부고를 자주 만나게 된다. 평균 수명이 80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처럼 들린다.


어쩌면 우리는 120살이라는 시간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장수는 축복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가끔 '그것이 과연 누구에게나 축복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70대 회장님과 자리를 함께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분이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그 친구가 불러주는 곳이 없다고 불만이라는 것이었다.


친구분은 회사를 퇴직한 후 뚜렷하게 하는 일이 없다 보니, 막상 만나도 나눌 이야기가 없다고 했다. 사업 이야기도, 봉사 이야기도, 취미 이야기도 없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자기 불만으로, 세상 불만으로 흘렀고, 회장님은 그 친구와 함께 하는 자리가 편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러주는 곳이 없다는 말은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게 건넬 이야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꼭 나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젊어도 마찬가지다.


내게도 만나면 매번 불평을 늘어놓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잘 지내냐는 말은 건네지만, 선뜻 만나자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만나봐야 불편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작 만나고 싶은 친구들은 늘 바쁘다. 불러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들은

재미를 주는 사람,

의미를 주는 사람,

무언가를 배우게 하는 사람 곁에 모인다.


그 사람이 70이든 80이든,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날 회장님은 내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정 전무는 나중에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인공지능이나 바이브 코딩처럼 시의적절한 주제를 남들보다 먼저 섭렵하려 애쓰는 사람이니 곁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겠어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무거움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지금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렇게 되려고 버티고 있는 걸까?



자기만의 일이 있는 사람은 쉽게 늙지 않는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일이 주는 재미와 의미,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그 이유가 있는 한 사람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120살까지 산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그 자리에 있을까?


요즘 그 질문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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