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 오십을 앞둔 친구의 고민
오늘 점심을 혼자 먹었다. 단체 테이블에 앉게 되었는데 양 옆으로 두 명씩 짝을 지어 앉고, 나만 홀로 앉아 갈비탕을 주문했다. 누군가는 그 장면을 보고 조금 측은하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 또래 남자 어른들이 가장 어색해하는 것 중 하나가 혼자 밥 먹기다. 왠지 쑥스럽고, 왠지 무안하고, 시선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갈비탕을 떠먹으면서 이전 미팅을 정리하고, 작성해 둔 글을 다듬었고, 금방 떠오른 생각을 정리했고, 다음에 있을 오후 미팅을 준비했다. 솔직히 말하면 옆 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혼자인 시간이 이미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몇 년 전 홍콩에 파견을 나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혼자가 됐다. 회사에서 나간 사람은 나 하나였다. 옆 자리 사람들과 함께였지만, 함께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소속된 조직도 달랐고, 언어도 달랐고, 맥락도 달랐고, 퇴근 후 갈 곳도 마땅치 않았다. 혼자인 시간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강제로 혼자가 되는 나날이었다.
그때부터 음식점에 노트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혼자 앉아서 급하게 먹지 않아도 됐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물론 자리가 붐빌 때는 빨리 먹고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여유가 생기면 노트를 펼쳤다. 생각을 적었고, 문장을 다듬었고, 그러다 보니 혼자인 시간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게 아니라, 채워지는 시간으로.
그게 변곡점이었다. 강제된 고독이 오히려 나를 나와 친해지게 만든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친한 고향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마침 세무법인 홈페이지를 바이브 코딩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일이 아니라 그냥 재미로. 내 옆에는 읽다 만 책이 열 권쯤 쌓여 있었고, 한동안 펼치지 못한 그림 노트도 책상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주 브런치에 올릴 글도 아이디어만 적어두고 아직 첫 문장을 쓰지 못한 상태였다. 시간은 늘 모자랐고, 갑자기 혼자가 된 저녁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친구의 목소리는 약간 풀려 있었다. 잘 지내냐고 물으면 잘 지낸다고 할 사람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내가 물으니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말끝이 묘하게 흘렀다. 최근에는 아내와 아이들은 안방에 있고, 자신은 거실에 혼자 있다고 했다.
같은 집 안에 있는데.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데. 마치 자신이 타인이 되어 버린 느낌이라고 했다.
나는 섣불리 말하지 않았다. 그건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외로움이었다.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인 느낌. 술기운에 전화를 걸 만큼, 그날 밤 외로움이 그를 깊이 건드렸던 모양이었다.
"너는 하고 싶은 게 없구나."
내가 툭 던졌다. 친구는 잠깐 멈칫하더니, '없지 나는', 하고 담담하게 받았다. 부정하지 않았다. 혼자인 시간에 채울 것이 없으면 그 시간이 얼마나 공허할까? 술자리에서는 누구보다 화려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허했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채우고자 매일을 그렇게 반복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속으로 여러 말을 생각했다. '목공이든, 글쓰기든, 독서든, 뭐라도 시작해 보라고'. 하지만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친구가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설명으로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 친구도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니 참기로 했다. 그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나이가 들수록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친구처럼. 말도 걸어주고, 재미도 던져주고, 가끔은 하고 싶은 것을 물어봐 주는 것. 자기에게 무심한 채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 안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가족이 없는 게 아닌데, 가족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되지 않는 밤이 오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반쯤 완성된 세무법인 홈페이지가 켜져 있었다. 집 안은 조용했고, 저녁노을이 창문 너머로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친구는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다만 잘 살고 있다는 것이, 자기 자신과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그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어떤 밤에는 전혀 다른 말이 된다.
친구의 외로운 그 밤이 빨리 지나가 자기와 대화할 시간을 갖기를 바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