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나에게 권한 책 [우파 아버지를 부탁해]
아내는 자신이 읽은 책을 나에게 잘 권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주로 실용서를 읽고, 아내는 소설을 읽는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이 책만큼은 꼭 읽어보라 했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조금은 숙제처럼 책을 펼쳤다. 읽는 내내 아내 생각이 많이 났다.
어느날 어머니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집 식구는 다 안경을 썼는데 너는 안썼구나."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 아들, 딸까지 모두 안경을 쓴다. 아내만 쓰지 않는다. 어머니는 본인도 임씨이면서, 굳이 '우리 집 식구'를 구분했다. 마치 아내는 여전히 남의 집 사람인 것처럼.
아내는 그 말을 오래 마음에 담아두었다
"나는 왜 우리 집이 아니에요? 나는 남의 집 사람이에요?"
사실 아내도 가끔은 안경을 쓴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은, 안경을 쓰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와 다른 가족을 갈라놓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처가라고 다를까?
처갓집은 딸만 셋이다. 술먹파인 장모님과 둘째, 술 안 먹파인 아내와 장인어른, 그리고 중도파인 막내. 장모님은 술먹파인 나를 친아들처럼 여기며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아내를 은근히 지적하곤 한다. 마치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이해를 딸에게서 대신 얻으려는 것처럼 지적한다
"남편이 밖에서 술 한잔 하는 걸 왜 이해 못 하냐?"
나는 속으로 말하고 싶다. 아내가 술을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정신을 차릴 때까지만 먹으라는 거라고. 하지만 장모님은 이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있다.
“내 어머니는 어디 있냐?”는 아내의 말을 나는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아내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을 신보다 윗사람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가진 아버지를 둔 나와 달리 아내는 부모로부터 늘 "더 잘해라, 더 나아가라"는 말만 듣는 사람이었다. 지지보다는 기대가 앞서는 말들 속에서 아내의 마음은 지쳐 보였다.
그에 비해 나는 다르다. 뭘 해도 잘할 거라고 믿어주는 어머니, 아들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숨기지 않는 아버지.
아내는 씁쓸하게 말한다.
"그래서 당신은 자존감이 높은가 보다."
자식을 돌보는 데 아들딸 구분이 있겠냐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처가를 챙기고, 우리 집은 동생이 챙기면 되지."
직장도, 결혼도 하지 않은 동생은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병원 모시는 일은 늘 동생의 몫이었다. 그러다 내가 어쩌다 한 번 시간을 내면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큰아들이 그 바쁜 와중에 시간을 냈네."
나는 늘 동생에게 빚진 느낌이었다.
동생의 한마디가 더 마음을 건드렸다.
"우리 어머니, 맞출 만한 여자가 있을까? 잘못 결혼했다가 집안에 분란만 일으킬 것 같아."
19년을 만나던 사람과 헤어진 동생에게 6개월 만에 결혼해 20년째 살고 있는 형으로서 해줄 말이 없었다.
때로는 동생이 형처럼 느껴졌다. 경제력은 내가 앞설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그리고 부모에게 있어서도 오히려 내가 동생 같았다.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동생인데.
책의 제목은 『우파 아버지를 부탁해』였지만, 책 속에서 끝내 완전한 우파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
나 역시 노년이 되면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내 자식의 배우자를 은근히 '남의 집 사람'으로 구분하고, 지지보다 기대를 앞세우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편을 가르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어떤 아버지로 남게 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아내에게 물었다. 어떤 부분이 좋았냐고? 아내의 대답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아내가 주목한 건 가족 이야기가 아니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요양병원의 장면들이었다.
요양보호사 이야기를 하며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병원도, 복지부도, 요양보호사협회도 아무도 그들의 현실에 제대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정작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로 간다고.
나도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환자가 환자로 대우받기보다 번호로 불린다는 느낌이었다. 의료진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들도 지쳐 보였다. 너무 많은 환자, 너무 부족한 시간. 인격적으로 대하고 싶어도 구조가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내는 내가 그 이야기를 브런치에 써줬으면 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이 현실을 말해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한참 생각했다.
환자도, 의료진도, 요양보호사도 모두 어떤 구조 안에서 소모되고 있다. 병원은 돌봄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효율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좋은 아버지가 되는 일도, 좋은 환자 곁에 있어주는 일도, 결국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나는 누군가를 '사람'으로 보고 있는가?'
협회든 정부든, 서류 위에서 숫자로 다루는 그 문제가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의 전부다. 요양보호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환자의 수, 야간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 그 피로가 쌓이면 결국 돌봄의 질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달라진 돌봄을 받는 사람은 남의 부모가 아니다. 내 부모이고, 언젠가는 나 자신이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도,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도, 지금 당장은 그 병실과 거리가 멀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는 누구에게나 예약되어 있다.
단지 아직 순서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순서는 생각보다 빨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