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선택, 자유란 무엇일까?
그는 코인으로 몇십억을 번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닿지 못할 숫자였다. 그런 그가 홍콩 센트럴의 좁은 12층 갤러리를 방문했다. 내 그림들 사이를 천천히 걷더니,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저 어제 홍콩에서 천억 대 코인 자산가를 만났어요."
뜬금없는 시작이었다.
그 사람이 놀란 건 숫자가 아니었다.
천억을 가진 사람의 태도였다. 옷차림은 자산을 알 수 없을 만큼 거지처럼 초라했고, 그는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천억 자산가는 말했다. 어디나 다 비슷한 오성급 호텔보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에어비앤비가 좋다고, 입기 불편한 명품보다 낡지만 편한 옷이 좋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곧 행복은 아닌 것 같다고.
몇십억의 그는,
천억이 아니라 ‘자유’ 앞에서 멈췄다
한국에서는 전혀 생각 못했던 것을 홍콩에 와서 느꼈다고 했다. 다른 사회에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자 자신의 생각의 기준이 흔들린 것이다.
"그걸 보고 나서 계속 생각이 납니다.
나는 뭘 해야 하나?"
나는 23년을 국세청에서 보냈다.
역외탈세, 해외계좌, 홍콩을 경유한 자금의 흐름 분석. 수많은 부자들의 숫자를 들여다봤다.
하지만 그 숫자 뒤의 ‘삶’은, 내 업무가 아니었다.
퇴직 후 내가 선택한 것은 그림이었다. 나는 팔리지 않아도 되는 일을 선택했다. 그 그림들이 걸린 갤러리에서, 몇십억을 가진 남자가 나에게 삶의 질문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은 숫자와 무관했다.
돈이 몇십억이든, 천억이든, 혹은 월급쟁이든 — "나는 뭘 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돈이 부족할 때는 들리지 않는다.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서야, 비로 들린다.
배가 고플 때는 무엇을 먹을지만 생각한다. 배가 부르고 나서야 비로소 —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묻게 된다.
천억 자산가의 낡은 티셔츠가 몇 십억을 가진 그에게 그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가 갤러리를 나서며 말했다.
"돈이 안 되는 걸 이렇게 하시다니, 진짜 멋있어요."
나는 웃었다.
돈이 안 된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그 그림들이 오늘 이 남자에게 질문 하나를 남겼다면 —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떤 만남은, 돈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