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의 무거움을 느낀 날을 떠올렸다
링크드인이 알림을 보내왔다.
"해인님에게 딱 맞는 공고예요."
테슬라 코리아 Tax Manager. 알고리즘이 내 경력을 분석해서 보여줬겠지만, 공고를 열어보니 마치 내 이력서를 읽고 쓴 것 같았다. 잠깐 흔들렸다. 솔직히 지원할까 생각도 했다. 지금처럼 영업을 할 필요도 없고, 주어진 일만 해도 되는 자리일 수도 있으니까. 대우도 좋을 것이고, 요즘 테슬라 주가를 보면 월급보다 주식으로 오르는 게 더 클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알림을 닫았다.
한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 상방이 막힌다. 테슬라 코리아 Tax Manager, 그게 천장이 된다. 며칠 후엔 알리바바였다. 1-3년 세무경력 자리. 텐센트는 영어 한국어 중국어가 필요한 세무 경력자 자리였다. 세 공고 다 이유는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내가 들어가고 싶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주변에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안정적인 직장도 많은데 왜 리스크를 지냐고 한다. 국세청 동기들 중에 아직 안정적인 자리에 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여야 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나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입의 안정이 곧 심리의 안정을 의미하지는 않으니까.
나오기로 결심한 건 어느 회의실에서였다.
300억 과세 건이었다. 나를 포함한 상위 관리자 네 명이 모였다. 내 판단에 과세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10%에 불과했다. 그런데 결론은 과세였다. 회의실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객관적이지 않은 과세를 해야 하는 조직이라면, 나는 나오는 게 맞다고.
그게 23년의 끝이었다.
그걸 스스로 마다하고 나와서 지금은 클라이언트를 직접 만나고, 영업을 하고, 혼자 결정해야 하는 일들을 짊어진다. 수입이 불규칙한 달도 있다. 거의 사업에 가깝다. 그러면서 또 테슬라 공고를 보고 흔들렸다는 게,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다.
오늘도 고객 미팅이 끝난 건 11시 50분이었다. 누군가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시간, 나는 혼자였다. 매일 약속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 조직에서 직원들과 함께 있던 그 시간이, 그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가끔 그립다.
그래도 알림을 닫은 건, 이 외로움이 자유의 값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날지는 모르겠다. 다만 추락하더라도, 그건 내가 선택한 추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