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자주 쓰게 되는 연필
늘 이용하던 연필 깎기 대신
커터칼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저 몇 번 돌리면 아름답고 편하게
깎여 나오는 연필
그런 간편함을 멀리하고
애써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이다
벌써부터 마음속에서는 난리다
'괜한 일을 한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고생만 한다'
'그래 다 맞아'
'그런데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어'
그 마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깎아나갔다
모양도 마음에 들지 않고
이리저리 삐뚤빼뚤하지만
첫 시도에 괜찮아 보였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하지는 못한다
물론 재능 있는 소수는
처음부터 잘할 수도 있겠지만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쌓아간다
어쩌면 내게도 그림은
그와 같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한 끝에
얻은 기술 같은 것이었다
남들은 그림을 잘 그려서 좋겠다고 하지만
정작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투입했던 시간들, 관심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는 데 운동 신경이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전거를 타게 되는 것처럼
내 생각에 그림 실력 혹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저 재능이 아닌
이런 기술이 아닐까 싶다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이
페달을 밟고 균형감각을 잡는 것처럼
처음에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구든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림 그리기는
자전거 타기처럼
늘어나는 것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가 뒤에서 잡아주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는 실패(비뚤어진 선과 같은)를
견뎌내지 못하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그려야만 한다고
생각하기에
모두들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는데
겁을 내는 건 아닐까?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저도 그렇게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건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은 아니에요"
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어린 시절 나 역시
그림을 잘 그리기는커녕
매번 못 그린다고 선생님께 혼났던
평범한 학생이었다가
수업을 들으며 연습하고
매일 꾸준히 하여 쌓였던
스케치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적절하게 설명하기 어려워
그럴 때마다 그저 웃고 말았다
물론 내 그림이
아주 뛰어나거나 비범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게 그릴 자신도 없을 뿐더러 나는
내 스타일대로 그리는데 만족하고 있다
과연 내 그림은 타고난 재능인 걸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그림 실력을 타고났다면
어릴 적부터 이리 미술로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림이
다 재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그림 그리기의 매력에
빠진다면 계속
그림을 이어나갈 것이라 믿는다
부디 하루에 선 하나만이라도
그려보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빈센트 반 고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