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는 걸인이 보였다
보통 때 같았으면 그저
휙 하고 지나쳤을 텐데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내가 잘못 본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목에 끈으로 붓을 메어
쓰고 있었다
심지어 글자조차 악필이 아닌
정자체로 잘 쓰인 글씨였다
사무실에 돌아와 내 글씨를 돌아보았다
정작 난 손가락으로
펜을 잡고 글을 쓰고 있음에도
글씨가 예쁘지 않았다
악필은 타고난 것이려니 했던
나의 생각이 한 번에 무너져 버렸다
글씨에 대해서
더 이상 변명을 못하겠다
다리 위의 그분을 생각하며
캘리그라피 정도는 아닐지라도
조금 더 글씨를 제대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