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고 왔다. 모두들 땀으로 범벅이기에 아이들부터 씻고 내가 마지막으로 씻었다.
따뜻한 물을 맞고 있는 순간이 참 좋았다. 소금기와 먼지로 뒤덮인 답답한 거죽 한 꺼풀이 벗겨져 나가는 개운 함이랄까?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바디 샤워에서 퍼지는 은은한 향기까지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내게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순간은 따뜻한 물을 그저 멍하니 맞고 있는 때였다.
유일하게 씻는 순간만큼은 진정으로 나 홀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간섭 없이 진정으로 혼자 있는 순간, 그 순간이 주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집에서는 사실 눈치가 보인다.
혼자만 욕실을 전세 낼 수도 없고 씻지도 않고 물을 많이 흘려보내는 것이 나도 모르게 아내의 눈치가 보인다.
특별히 아내가 씻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는 아니지만 혼자만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아 얼른 씻고 나온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눈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목욕탕에서 나만의 행복을 만끽한다.
아직은 아저씨가 덜 되었는지 목욕탕에서 "시원하다"라는 다른 아저씨들의 말을 반쯤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아들은 더더욱 이해를 못한다. 이 뜨거운 물을 왜 "시원하다"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아저씨들은 다들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나는 목욕탕에서는 잠시 몸을 데우기만 하고 얼른 따뜻한 물 샤워를 하러 간다.
다리에 힘이 풀릴 때까지 멍하니 맞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흘려보내는 물이 자원을 낭비하는 것 같아 지구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구야 미안하다. 자주 그러는 것은 아니니 한 번만 아저씨의 사치를 허용해주면 안 되겠니?"
다시 따뜻한 물에 집중하며 생각에 잠긴다.
'나는 사소한 즐거움을 놓치면서 무언가 거대하고 대단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