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thing"이라는 책을 보다가 한 화가의 말이 내 마음에 한 줄기 빛을 주었다.
"매일매일 그을 그리다 보니 열정이 기술이 되었고 어느 순간 직업이 되었다."
취미에서 직업으로 가는 단계가 그 말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왜 그림을 그리냐고?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아주 비중 있는 한 가지가 노후 대비다. 퇴직 후 노후에 많아지는 시간을 대비하여 시간 보내는 방법 중의 하나로 그림을 선택했다. 또한 금전적 대비다. 그림을 하나 팔아서 1년 동안 먹고사는 것은 사실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죽기 직전이나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림을 한 달 단위 혹은 하루 생활비 정도는 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다른 상품을 통해 연금을 준비하고 그림은 그저 이를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림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투입 시간 대비 효율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 나의 그림 실력은 화가가 말한 수준 중 어디일까?
아마도 기술의 초기 단계쯤 아닐까 싶다.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단계별로 어떤 특징을 지닐까?
우선 열정의 단계.
열정의 단계에서는 그 일에 흥미를 갖게 되는 때이다. 문득 무언가를 접했을 때 '이거 괜찮겠네'하면서 시도를 하게 되는 단계이다. 물론 아직 열정만 갖고 있을 뿐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결과물에 대한 만족이 가능하지 않기에 꾸준하게 하기는 아직 어려운 단계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단계이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멈춰 버리게 된다. 마치 사라의 열병처럼 갑자기 휘몰아쳤다가 금세 사라지기도 한다.
두 번째 기술의 단계.
어느 정도의 기본기는 읽힌 단계다. 초기 열악한 결과물에 비해 어설프지만 나름 형태를 갖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완성도가 뛰어난 것들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아직 디테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정의 단계보다는 어느 정도 나은 결과물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만족도도 어느 정도는 있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아직 미온적이다. 그들의 시선은 대부분 프로의 결과물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부족한 내 결과물을 보게 되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경우가 많다. 그런 시선에 좌절하면 이 단계에서 멈춰버린다. 자신의 실력을 의식의 단계를 넘어 무의식적 단계로 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 번째 직업의 단계.
이 정도 단계가 되면 일단 결과물에서 완벽을 추구한다. 상업적인 판매 혹은 결과적인 책임을 저야 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단순히 좋아해서 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의 단계에서 받지 않았던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즉 좋아서 하는 수준을 넘어 남을 기쁘게 하거나 만족하게 해야 하는 것인데, 이는 내 의지와는 전적으로 무관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하든 열심히 하지 않았든 결과물에 따라 좋은 반응 혹은 비난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 내 그림의 단계는 기술 초입부로 보인다. 기본기는 약간 익혔으나 아직 몸에 완전히 익지 않은 단계.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단계이니 말이다. 한 달 동안 그림은 잠시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 그림에 대한 공부, 나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나서 동기를 확실하게 다진 뒤 내년 초부터 다시 해 볼 생각이다. 그때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료들과 함께 그룹으로 하기에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겠지? 부디 내년에는 기술의 단계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