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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Mar 25. 2019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다면

고급 장비보다 습관을 먼저 기르자

나는 가끔 글 쓰기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얼마 전 직장 동료 중에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물어보신 분이 계셨다.

집에서 글을 쓰고 싶은데 집에 있는 컴퓨터가 오래돼서 글을 쓰지 않게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새해가 왔으니 글을 쓰기 위해 최신형 컴퓨터와 고급 노트북부터 마련하겠다고 했다.

본인의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로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컴퓨터 사양이 좋지 않아 컴퓨터를 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니 컴퓨터를 새로 구매해야 하겠다고 했다.

(내 생각엔 그저 새 컴퓨터를 갖고 싶은 욕망에 대한 적당한 이유로 글 쓰기를 말한 것으로 보였으나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선한 의도로써 글 쓰기에 대한 질문으로 생각하고 답을 드렸다.

우선 내 생각엔 장비에 대한 투자보다 그분의 습관부터 바꾸는 것이 먼저였다.

평소에 글을 쓰지 않다가 갑자기 쓰려면 분명 장애물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분에게 있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장비 구입이 아닌 습관 형성이 먼저라 생각되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100km로 달리는 열차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그렇게 열차를 급하게 멈추면 탈이 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몇 년 혹은 몇십 년 동안 글을 쓰지 않다가 갑자기 쓰려고 하면 몸이 불편하다. 아니 어딘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게다.

갑자기 글을 쓰려면 분명 글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분에게 몇 가지 제안을 했다.


1. 알람을 맞춰라

그분에게 스마트폰을 이용해 하루에 두 번 알람을 맞추게 했다.

사무실에서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이렇게 딱 두 번이었다.

본인은 몇 번이나 더 쓸 수 있다고 자신하셨지만 사람의 의지가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오히려 가끔은 의지가 아닌 기계에 의해 환경설정을 했을 때 오히려 더 행동을 더 잘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분명 일이 바쁘거나 다른 일정 때문에 글쓰기를 놓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알람이 울렸을 때 2번 중에 1번 만이라도 주위에 있는 노트에 적으라고 했다.

알람을 맞춰두면 본인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의지가 아닌 환경설정의 힘을 이용하여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2. 주제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분은 글을 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떤 분야를 적어야 할지 막막하게 생각했다.

그저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내용을 적도록 했다.

무슨 생각이든지 업무가 되었든 수필이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떠오르는 대로 적게 했다.

물론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써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렇게 쓰고 싶은 것을 쓰다 보면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가 보인다. 

쓰고 싶은 글도 점점 늘어난다. 

남들에게 잘 읽히는 글은 잘 쓴 글이 아니라 재미가 있거나 특이한 이야기가 있는 글이다. 

그렇지만 그런 내용의 글을 쓰는 것은 어느 정도 글을 쓰는 습관이 형성된 이후의 이야기다.

일단 쓰는 것조차 불편하다면 쓰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먼저다. 


3. 많이 쓰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최소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보통 글을 써야 한다고 하면 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라도 나만의 고유한 생각이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시작이 너무 거창할수록 유지하기 어렵다. '하루에 한 단어 적기' 이렇게 목표를 적게 잡아 놓으면 설마 '이렇게 사소한 것도 못하겠어?'라는 생각에 꾸준하게 쓰게 된다.


그분은 여러 줄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사실 단어 하나만 적으라고 하려 했으나 최소한 한 줄 정도는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했다.

가급적이면 하루에 3줄 정도는 쓰기를 권했다. 한 단어나 한 줄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짧아 보여 글을 쓰고 싶다면 3줄 정도면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나중에 결과를 들어보니 처음에는 20줄 다음날에는 10줄 마지막 날에는 1줄을 썼다고 한다. 결국 1주일이 지나 포기했다는 결과를 들었다.)


4. 완벽함을 버려라. 

그 넓은 노트에 단 한 줄을 적거나 3줄을 적었지만 나머지 밑에 있는 노트의 공백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냥 여백으로 놔둬도 되는지? 궁금해하셨다.

(본인이 선택한 노트는 a4 사이즈 정도 되는 대학 노트였다. 거기에 날짜와 3줄만 적으니 밑에 남겨진 공백이 너무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은 여백이지만 나중에는 그 여백이 모자랄 수 있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다른 생각이 났을 때 그 노트에 덧붙일 공간으로 생각해 보라고 했다. 또한 원래 적었던 생각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생각이라면 밑에다가 고쳐서 쓸 수도 있었다.

즉 지금 쓴 글은 그저 씨앗과 같은 재료로 생각해야 했다. 첫 술에 완성작이 나온다는 것은 크나큰 욕심이다. 씨앗을 잘 키우고 다듬어서 제대로 된 식물을 길러내듯 이미 쓰인 글을 다듬고 그것에 생각을 보태어 글로 만드는 것이다.


글씨를 잘 써야 하는 것은 아닌지도 물었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고 자신만의 노트라면 굳이 서체를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물론 너무 흘려서 쓰면 나중에 내가 무슨 이야기를 썼는지 모를 수도 있지만 악필도 그것만의 추억 아닐까?  나도 예전 군대 시절에 수첩에 그때의 어려움들을 적었는데 너무 악필로 적어 도무지 무슨 글자를 썼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마치 추리소설을 유추하듯 그때 내용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노트를 쓴 다면 딱 한 가지만 생각하자. 공간을 채운다. 그것이 의미 없는 글로 보이든 낙서가 되었든 아무 상관없다. 


5. 날짜를 미리 써놓는다.

그분은 빈 노트를 만들어서 거기에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노트에 미리 오늘부터 일주일 뒤의 날짜까지 미리 적게 했다. 한 페이지마다 하루의 날짜를 적게 했다. 그분은 한 페이지에 날짜 하루를 적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어차피 쓰지도 않을 노트를 일부라도 사용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크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라 생각했다. 나는 그분에게 '어차피 기존의 방식대로 쓰다가 3장만 쓰고 집에 놔둘 거면 무용지물 아니냐?'라고 물었다. 그분은 답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분의 글 쓰기는 내가 적게 했던 마지막 날짜에서 끝이 났다)


그런데 '노트 위에 적은 날짜' 이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보통 커피 전문점과 같은 곳에 가면 포인트 적립 카드를 준다. 거기에 보통 한 잔 정도 미리 채워진 경우도 있고 아예 없는 곳도 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상 미리 채워진 경우에 더 많이 가게 된다. 심리적으로 한 칸이 아닌 두 칸이 채워졌을 경우 더 많이 가게 된다고 한다.

즉 노트 위에 날짜를 적는 것은 글을 쓰는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날짜를 적는 것도 글 쓰기의 문턱이기 때문이다. 즉 글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심리적으로 공백을 보면 채우고 싶어 한다.

빈 틈이 있는 원을 보더라도 우리는 심리적으로 원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그러니 날짜를 적고 빈 페이지를 남겨 놓으면 뭐라도 적고 싶어 지게 된다. 그 심리를 이용해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6. 노트든 스마트폰이든 음성이든 무엇에 적든 상관없다.

업무가 바쁜 날 생각은 많은데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운동을 하다가 생각이 들 때 메모를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그럴 때는 글 대신 메모를 하자. 

나는 그분에게 스마트폰을 통해 메모를 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독수리 타법이라 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음성 녹음을 이용해서 남겨놓는 방법을 추천했다. 물론 그때의 생각들을 모두 살릴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음성이라도 남겨놓았을 때 지나가는 생각도 잡아낼 수 있고 손이 아닌 입으로써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7. 꾸준히 쓰자.

사실 꾸준히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 예전에 나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동기 부여로써 달력에 x자를 표시를 했다. x자를 표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보인다. 하지만 달력에 x가 하루가 아니라 이틀이나 사흘이 되면 뱀의 몸통처럼 보인다. x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더 붙여서 계속해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즉 계속 잇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꼭 달력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꾸준히 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보자. 


8. 핑계는 이제 그만

시간이 없다. 정말 바쁘다. 그분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화장실 갈 시간은 있지 않나?' 

'정말 하루에 1분의 여유시간도 없을까?'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인간관계를 위해 돌려서 물었다.

'인터넷 볼 시간은 있지 않으세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바쁘다고 믿는다. 바쁜 게 아니라. 분명 노는 시간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동시간 등등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여유시간이 있다. 다만 인지하지 못할 뿐

나는 1분 단위로 노트에 나의 1주일을 적어본 경험이 있다. 

바쁘다고 생각해서 정말 바쁜 것인지 실험을 해 본 것이다. 적어 보고 나니 생각보다 너무 많은 시간의 누수에 저절로 반성이 되었다. 


우리는 바쁘다고 하면서 수다도 떨고 스마트폰도 보고 인터넷 서핑도 한다. 

다만 그 시간이 우리의 뇌 속에는 그저 여유라는 명목으로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다. 

여유 시간 중 단 1분만이라도 인생에 유익한 시간으로 바꿔보자. 

특히나 그 시간을 메모가 되었든 글이 되었든 무언가 적는 시간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아쉽게도 그분의 글쓰기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다음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하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몇 줄이라도 그 만의 이야기가 생겼으니 그것으로 족한 것이었을까?


나는 글이라는 것은 내 행동이나 내 인생의 모습을 활자의 형태로 변환한 것이라 생각한다. 

즉, 글이란 자신의 인생에서 특이한 점들을 찾아내서 그것을 기록으로 만드는 것이라 느낀다. 

본인만의 개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찾지 못하는 것일 뿐.

다른 이들도 부디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는 글을 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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