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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an 17. 2019

#17 금색 사슴의 재활용

100 d100 d. Project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다. 운동을 하러 나갈 시간이다. 6시 5분이라는 시간을 일단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오늘의 주제는 시계이니까.

원래 우리 집에 시계는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충분히 시간을 알 수 있는데 굳이 시계가 필요할까 싶었다. 하지만 작은 시계라도 하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탁상시계를 하나 샀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시계였다.

온통 빨간색으로 둘러싸인 단순한 시계.

우리 동네 다이소가 아닌 미니소에서 샀다.

시침과 분침을 그렸는데 원이 찌그러졌다. 원래는 정말 둥그런 원이 되어야 하는데. 분의 간격도 모두 제각각이다. 전에도 느끼는 것이지만 내 그림은 참 규칙이 없다. 그냥 손가는대로 그리다 보니 선이 술에 취한 듯 이리저리 흔들린다. 다른 분들의 그림을 보면 미리 구도도 생각하고 연필로 사전 스케치도 하고 준비를 많이 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는 틀에 잡힌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난 그냥 그런 규칙이나 얽매임이 싫다. 조금 찌그러져도 흐트러져도 나만의 느낌으로 남는 다른 무언가가 좋다. 똑같고 정확하게 그리려면 그런 건 나보다는 기계가 더 잘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사진으로 찍는 것이 무언가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림에 나의 느낌을 담고 싶다. 가끔은 자유스러운 손에서 느껴지는 흔들림, 부자연스러움 그런 것들이 오히려 더 사람 냄새나는 나만의 그림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초간단 스케치를 모두 마쳤다. 원래 시계는 아무 장식도 없는 정확한 사각형이다. 그런데 너무 밋밋해 보여서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썼던 사슴 한 마리를 떼어 왔다. 밑에 꽂았던 플라스틱 막대기는 부러트리고 시계 위에 금색 사슴만 올려놓았다. 뿔이 원래는 조금 빈약한데 그리다 보니 너무 부각되었다.


밋밋한 그림을 달래고자 색연필을 들었다.

우리 집 책선반에 올려져 있는 작은 시계. 시계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잘 살려보고 싶었는데 딱히 느낌이 안 산다. 황금빛이 나는 사슴 역시 샛노란 사슴으로 변했다. 진한 빨간색과 빛의 조화는 어딘가 모르게 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나만의 그림을 그렸음에 만족하며 펜을 내려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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