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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Feb 12. 2016

일상의 흔적

지하철 선반에 올라간 내 가방
사람들의 신발들


한동안 뭐하느라 바빴는지

그림을 못 그린지도 꽤 되었다.


아예 오늘은 아침에 좀 일찍 나왔다.  

그 덕분인지 지하철에 사람이 없어서

전에 그린 그림을 다시 보았다.


첫번째는 지하철 선반에 올라간 가방이다.

선반에 올려져 있는 가방끈이 길게 늘어진 것이

퇴근길에 축 늘어진 내 모습 같아 안 쓰러웠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가방끈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아

느낌은 잘 살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오른쪽에 그물로 된 부분을 그리기 귀찮아서 점으로 표현했던 부분은

나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두번째는 식당 그리고 퇴근길이다.

모임이 있어서 식당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홀로 인터넷을 하려다 시간이 너무 아까워 상위에 올려져 있는 휴지통을 그려 보았다.

휴지통 외곽의 모습은 그럭저럭 그려냈지만 휴지 본연의 모습은 살리지 못했다.

생기 넘치는 휴지의 모습이랄까? 아무튼 아직 초보인 나에게 너무 어려운 기술이다.


술을 한잔 걸치고 지하철에 앉아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맞은 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려다

초상권 침해와 째려보는 눈빛 덕분에

시선은 정면이 아닌 아래를 향했다


사람들이 신고 있는 신발 ,

그것들을 그려보려 했다.

일단 내 신발부터 그렸다 


두 짝 다 그리려다 한짝만 그렸다.

한 40여분간의 탑승시간 동안 그려야 하기에 내 신발만 그리다 끝내기엔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퇴근하는 아저씨, 아가씨, 학생, 커플

이렇게 순서대로 그려보았다.


(신기한 건 이렇게

그 사람의 모습을 전체 그린 것도 아닌데

그림만 보면 전체 모습이 회상되는 걸 보면

뇌란 놈은 참 신기하다. )


예전에 한 외국인이 내게 해 주었던 말이 기억난다.

"언어를 공부하는 건 학습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에 들어가는 문이다."


내 생각엔 그림도 비슷한 거 같다.

"그림이란 특정한 기술이 아니라 외부를 새롭게 바라보는 하나의 시야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고 난 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세밀하고 민감하게 바뀌지 않았나 싶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그리기는 시간이 지나면 늘어나는 기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무언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흔적들,

그것들이 인생을 조금은 더 깊이있게 살게 해 주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작은 낙서라도 나을 위해서 오늘 하나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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