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
아들이 기계 번역을 이야기하다가 굳이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 아들에게는 영어보다는 국어를 먼저 하라고 했다. 영어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려면 오히려 모국어인 국어부터 정립해야 했는데 아직 우리 아들에게는 국어가 더 모자라 보였다. 그렇지만 국어가 일정 수준에 올라갈 거라는 전제 하에 몇 가지를 더 이야기해 주었다.
영어 건배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To the three rings of marriage
The engagement ring,
The wedding ring,
and suffering.
굳이 번역하자면 결혼에는 세 반지가 있다는 뜻이다
약혼반지
결혼반지
그리고 고통
영어에서는 ring이라는 라임을 이용해 재미있는 유머를 만들어냈지만 그냥 한글로 번역된 내용만 놓고 봐서는 앞의 두 단어와 고통이라는 단어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영어에서는 똑같은 음을 소재로 삼았지만 번역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과연 자동번역이 그런 라임까지 알려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3R이 있다고 하자.
Report
Reaction
Recreation
그런데 한국어로는 3R을 표현할 수 없다.
리포트
리액션
리크리에이션
세 개의 리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또한, 언어마다 다른 단어 쌍의 부재가 있다. 예를 들어 초코파이 광고에 나오는 “정”이라는 단어를 보자. 영어로 번역하면 “sympathy” 정도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의미하는 “정”과는 많이 동떨어진 느낌이다. 영어에는 그런 단어조차 없다. 다른 문화권이기 때문에 단어 쌍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단어를 통한 설명이 필요하다.
과거에 번역을 업으로 삼기 위해 한국어-> 영어 기계번역을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나마 번역 효율성이 높은 기계 번역이었는데도 고칠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문맥에 따라서 바꿔줘야 할 내용도 있었다.
이를테면 “개나 소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cats and dogs라고 번역할 수는 없었다. 그런 부분은 한국어에서 쓰는 일상적인 표현인데 영어에서 그에 맞대응하는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반대로 영어에는 콜로케이션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리다는 have a cold라고 표현한다 catch a cold도 감기에 걸리다는 표현은 될 수 있지만 영어권 사람이 보면 어색하다. 이처럼 자주 쓰거나 관습적으로 쓰는 부분이 있다. 즉 언어 뒤에 숨은 의미가 있거니 습관적으로 쓰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번역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또한 기계번역이 행간을 번역해주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행간의 의미는 번역의 영역이 아니다. 두 문장 사이에 보이지 않는 뉘앙스는 번역으로 잡아줄 수 없다. 그런 뉘앙스는 본인이 느껴가면서 배울 수밖에 없다.
언어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 생각한다. 그 문을 대신 열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이 깨닫지 못하면 절대 그 문 뒤의 세계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기계번역 시대가 오더라도 외국어를 꼭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