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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ul 25. 2022

그들은 동사, 우리는 명사

언어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를 만든다.

  몇 년 전에 잠시 외국어 학원을 다녔었다. 원어민과 1시간 동안 대화 수업을 해야 했는데 듣는 것은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다. 대략 7~80% 정도는 정확하게 이해가 되었고 나머지는 문맥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말하기였다.


  난 무엇인가 한참을 말하고 있었는데 원어민은 내 말을 도통 알아듣지 못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내 말에 동사가 없었다. 명사만 계속 얘기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 그저께, 밥을, 친구, 함께, 재미있게, 먹었다.


  이렇게 드문드문 말이다. 한국말이라면 알아들었겠지만 이게 한국어가 아닌 영어였기에 원어민은 도무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원어민은 동사와 구조에 포인트를 두고 의미를 해석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떤 게 주어인지 모르게 계속 명사만 나열하니 상대방이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하는 건 당연했다.


  사실 한국어는 순서가 바뀌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물론 그 말이 자연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아까 문장에서

밥을, 친구, 나, 그저께,  함께, 재미있게, 먹었다.

이렇게 어순이 뒤바뀌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영어는 순서가 바뀌면 전혀 엉뚱한 말이 되어 버린다.

I eat hambuger

Hamburger, eat, I.(Hambuger eats me?)

똑같은 단어지만 영어는 어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영어는 주어와 동사 그다음에 설명이 이어지는 구조다. 그런데 동사를 이야기하지 않고 명사만 계속 나열하고 있으니 원어민의 입장에서는 문장의 구조를 알 수 없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국어에서는 내용을 끝까지 들어야 핵심 동사를 알 수 있는데 영어는 일단 동사를 먼저 던져 놓고 부연설명을 하고 있었다. 


  문득 언어마다 사고방식이 다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나라는 자신을 낮추고 속내를 나중에 드러내는 게 미덕인지라 동사가 나중에 등장하지만 영어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먼저 드러내기 위해 동사로써 원하는 바를 먼저 표현한 뒤에 상세한 내용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언어가 사고를 결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 언어 안에 녹아 있는 사고는 분명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지 다시금 생각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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