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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May 06. 2023

좋은 형, 나쁜 형

  내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어릴 때는 동생이 마냥 부러웠다. 상장도 많이 받아오고 동네 친구 녀석들을 다 이끌고 다니는 리더십도 있고 몸도 날랬다.

  하지만 동생에 비해 그때의 나는 공부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끌려가다 맞는 편도 있어 오히려 4살이나 어린 동생이 막아주기도 했다.

  나는 그저 남들이 하면 따라가는 처지였으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려고 하면 얼굴이 빨개져 쉽사리 말도 꺼내지 못하는 편이었다.


  어느덧 몇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직장인으로 동생은 취준생이 되었다. 동생에게 진작 다른 길을 권했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어쩌면 나는 그저 동생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싶은 좋은 형이 되고 싶은 건 아닌지 늘 고민이 되었다. 마음의 상처가 되더라도 동생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는 형이 보기에는 나쁜 형처럼 보였더라도 진정한 좋은 형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오랜 공부에 지친 동생에게 위로를 전하려다 오히려 전화를 끝내고 위로를 받은 나를 발견했다.


"형이 할 수 있는 것만 신경 썼으면 좋겠어.

지금 형이 고민하는 그 일은 형이 속으로 깊이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닌 거 같아.

가장으로서 내 짐까지 형에게 짊어지게 한 것 같아 미안해.

내가 형한테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나마 이런 형의 어려움이라도 들어주는 일 아닌가 싶어.

스트레스 때문에 약 먹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형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고 있는 거 같아.

그렇다고 너무 자신은 하지 말아. 형 자신을 너무 벼랑 끝까지 가혹하게 몰아붙이지는 말어.

한 번 손상된 장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형의 인생도 한 번 망가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거든.

이제 형 나이도 적지 않으니 건강 잘 챙기고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 줘. 하는 일 없는 동생이니 언제든 형의 고민은 들어줄게."



  문득 나는 동생에게 좋은 형일까? 나쁜 형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형 같은 동생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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