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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Mar 14. 2019

경험이라는 유산

돈 대신 추억을 남기자

주말을 맞아 오래간만에 집안 대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는 동안 잠시 음악을 틀었다.

주로 내가 듣는 음악은 클래식이나 뉴에이지 음악인데 오늘은 차분하지만 즐겁게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청소를 하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기쿠지로의 여름'을 들으며 시작했다.

https://bit.ly/1NfZVAq

옆에서 레고를 조립하던 아들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듣고 있었다.

'내가 언제 이 음악을 들려주었었나?' 싶은데 멜로디를 곧잘 따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 우리 집에도 전축이 있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LP판으로 곡을 들을 수 있는 도구였다.

아버지는 가끔씩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과 같은 클래식을 들으셨다.

https://bit.ly/2O0a36H

굳이 우리에게 이 음악이 무엇이라고 강요하시지는 않았다.

학습이나 공부가 아닌 그저 배경음악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 당시 아버지의 모습이 멋있어서 보여서 그랬는지 클래식은 그렇게 내 마음속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 덕분에 나는 가끔씩 머리가 어지러울 때마다 클래식을 듣게 되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음악을 듣던 내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지금의 상황으로 봐서는 우리 아이에게 돈이라는 유산을 물려주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가 내게 보여주었듯 나 역시 우리의 아이들에게 추억이라는 유산을 물려줘야 할 것 같다.


아버지의 경험 전달 방식은 다른 아버지들의 잔소리와는 달랐다.

그 흔한 공부하라는 얘기 한 마디 없으셨다.

고3인 나에게 오히려 등산을 가자고 할 정도로 다른 집 아버지와는 많이 다르셨다.

그 시절 나와 동생은 아버지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과연 우리 둘이 합쳐서 아버지만큼 될 수 있을까?"


우리 형제에게 아버지는 거대한 산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만능의 손을 가진 분 처럼보였다. 집안의 전기, 수도, 기계 등 못 고치시는 것이 없었다.

1990년대 아직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 누구보다 먼저 프로그램을 공부하시고 본인이 먼저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을 사무실에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또한 틈틈이 책을 읽는 모습과 기회가 되면 글 쓰기 대회에 투고를 하시어 작은 상도 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셨다.

퇴직을 몇 년 남지 않았지만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승진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씀 대신 늘 본인이 노력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셨다.


며칠 전 아들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아빠 나도 책 내고 싶어! 그냥 이렇게 적으면 되는 거야?"

여러 종이를 묶어 책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일기장을 한글 프로그램에 쳐 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물론 그 뒤로 며칠을 더 하지는 못해 완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글을 쓰고 그것을 엮어서 책을 내는 것이 아주 거대한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힘든 일이 아니라 그냥 밥을 먹고 숨을 쉬듯 일상처럼 느껴졌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아빠가 만든 책을 보고 이해를 할 수 없겠지만 몇 년이 더 지나거나 성인이 되어서 본 다면 직접 내가 잔소리로 아들에게 전달하는 것보다는 더 의미 있으리라 생각된다.


생각해보니 돈이 많은 아버지, 똑똑한 아버지가 아닌 지혜가 풍부한 아버지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행운이었다.

부디 이 행운을 나만 혼자 누릴 것이 아니라 나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주어야 함을 숙명처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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