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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Apr 08. 2019

#098   직장생활의 동반자

100d 100d project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쌀집 계산기를 가져왔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비슷한 계산기를 쓰고 있었다.

카시오에서 나온 계산기였다.

'아니 국산을 쓰지 않고 왜 일본산을 쓸까?'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계산기를 써보니 이해가 되었다

(혹시나 제가 모르는 계산기가 있으면 추천 바랍니다. 카시오가 정답은 아닐 테니까요)

쌀집 계산기를 쓰다 보니 단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일단 계산기를 치다 보면 소음이 너무 나서 주위의 집중을 한 몸에 받게 된다.

계산기를 치다 보면 자릿수가 부족하다. 업무를 하다 보면 보통 조 단위 숫자까지 쳐야 하는데 천억까지 치면 칠 자리가 없다. 12자리(천억)로는 한계가 있어 최소한 14자리 숫자(10조)까지는 있어야 했다.

쌀집 계산기로는 치다 보면 꼭 하나씩 틀렸다. 분명 정확하게 쳤는데 하나씩 오타가 났다. 키패드가 내 손놀림을 인식하지 못했다. 두 개를 쳤는데 하나가 나오거나, 하나를 눌렀는데 두 개가 나오는 불상사를 수시로 격어야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카시오 계산기를 마련했다.

쓰다 보니 세무나 회계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왜 이 계산기를 찾는지 알만했다.

계산기를 산 지 거의 20년이 다 되지만 아직도 팔팔하다. 빛으로 충전하는 판이 있어서 그런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배터리를 갈지 않고 있다.

내가 잘못 누르지만 않으면 오타가 나지 않는다. 거의 3~400개를 쳐도 그중에 오타가 한두 개 나오지 않는다.

소음 또한 그다지 크지 않다.

굳이 복잡한 공학 함수까지 계산할 일이 없었고 사칙 연산과 메모리 기능 정도면 충분하기에 이 계산기의 기능만으로 업무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계산기는 내 직장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들끼리 우스개 소리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 관절염이 온다면 무릎이 아니라 손가락 관절일 것이라고 했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을 숫자와의 씨름에 쓰고 있다.

아마도 계산기가 고장 나거나 숫자를 더 칠 수 없는 날이 와야 내 일을 그만둘 시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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