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Apr 02. 2019

꺼리의 부재

노년에 연금보다 더 필요한 것들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나선다.

이른 시간이라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나마 보이는 사람들은 도로 공사를 나온 사람들 일부와 노인분 몇몇 뿐이다.


문득 거리에 지나가는 노인분들을 보았다.

대부분 걷고 있거나 거리 공원에 비치된 운동 기구에서 운동을 하고 계셨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 이렇게 나와 움직이고 계신 것은 아니실까?


우리는 노년이라고 하면 연금만 생각한다.

즉 생활비라는 돈에 대한 고민이다.

하지만 생활비는 의료비가 아닌 이상 자기가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극빈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돈이 아닌 시간이다.

할 일 없이 주어진 많은 시간은 축복이 아닌 고통이다.

예전에 발목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거의 1달을 병원에 입원했는데 할 일 없이 누워 있는 것이 내 일상의 전부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 시간이 너무 아깝다. 독서와 글 쓰기 등 인생에서 따로 시간을 빼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음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밥 먹고 TV 보고 잠, 이런 패턴으로 움직였다.

일꺼리, 할꺼리, 놀꺼리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늙는다고 하더라도

일을 하려면 능력이 있어야 했다.

삶을 잘 유지해나가려면 튼튼한 체력이 뒷바탕 되어야 한다.

재미있는 삶을 만들고 싶으면 자기만의 취미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기초 생활비는 이런 것들의 기본 바탕이었다.

오히려 일을 통해 젊어서 준비 못한 기초 생활비를 보충하거나 미룰 수도 있는 일이었다.


1. 일꺼리

직장에 다니다 보면 우리는 경쟁력에 대해 잠시 잊는다.

자리를 종종 능력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바꿀 수 있는 나만의 교환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즉 돈으로 살 무언가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른 이에게 상담을 해 줄 수 있거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지식을 전달하거나 어떤 형태든 나만의 고유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은 회사에 있는 자기가 아닌 독립적인 나가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어야 진짜 자신만의 힘이 된다.

그러려면 자신에 대한 객관적 관찰을 늘려나가야 한다. 일기를 쓰고 다른 이에게 나의 능력을 묻고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직장 안에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은 상대적으로 하지 못한다. 바쁨에 묻혀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노년의 생활에서 연금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치열하게 나의 일꺼리를 고민해보자.


2. 할꺼리

술자리에서 손가락을 다쳤다는 한 지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70이 넘어가는 연세이신데, 과거에 운동도 하고 술도 잘 마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제는 본인을 관리해야 할 나이인데도 무리하게 과음을 하시다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를 만드셨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다.

평생 술로 살아온 분들을 만나면 만나서도 술을 권한다.

술이 주는 폐해를 익히 잘 알고 있음에도 만나서 늘 술을 마셨기 때문에 다른 활동으로 바꾸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가 술을 이기지 못하여 크게 다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친구를 만나서 할 수 있는 즉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건전한 활동을 고민해봐야 한다.


3. 놀꺼리

혼자 만의 시간에 할 수 있는 활동도 필요하다. 할꺼리가 타인과의 활동이라면 놀꺼리는 타인과의 활동도 있겠지만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활동이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놀꺼리가 그림이다. 물론 글 쓰기도 있지만 그림이 조금 더 재미있다.

그림을 그린 지 이제 3년이 조금 넘었다. 어느 정도 손에는 익지만 아직도 부자유스러운 부분이 많다.

앞으로 30년을 더 그릴 생각이다. 정확히는 죽기 전까지 계속 그릴 생각인데, 다만 타인에게 전시하는 것은 30년을 더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볼 요량이다.

놀꺼리인 취미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갑자기 주어진 시간에 취미를 만드는 것도 생각보다 고역이다. 처음에 굴러가지 않는 바퀴를 굴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까지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70이 넘어 그림을 시작하여 대성한 분도 많이 계신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것이기에 나는 미리 취미 하나는 개발해 두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노년에 있어 특별히 더 중요해 보였던 관계에 대해서는 몸으로 보여주셨던 할아버지 한 분이 기억나서 그 이야기로 글을 맺는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비가 살짝 흩날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밝은 주황색 가방에 우산을 끼워 들고 계셨다.

분명 내 눈에는 여자 가방으로 보였는데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잠시 후 허리가 많이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뒤따라 오셨다.

연세가 많은 할아버지가 여자 가방을 들어주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라 더욱 남달라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는 횡단보도를 지나 전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상향 에스컬레이터에서도 할아버지는 본인이 먼저 올라가지 않고 할머니를 먼저 올라가게 하고 본인은 뒤따라 올라가셨다.


그렇게 두 분이 지하철 개찰구로 들어가려는 찰나에 할머니는 개찰구  옆 화장실로 가셨고 할아버지는 말없이 화장실 앞을 지키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화장실 앞으로 지키며 들고 계셨던 주황색 가방이 내게 말하는 듯했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배려할 줄 아는 남편이 돼라"

전철을 타러 가며 할아버지가 몸소 보여주었던 행동이 더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오늘의 기록

구분 거리 증감(전일비)

반환 1.83km +60m

연속 2.68km +750m

        16'33"  +4'5"

최종 4.29km +660m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이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