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를 걷어낸 자리를 낙관으로 채우는 그룹, 세븐틴 부석순
맞다, 나 춤 좋아했었지.
월요일 오후 6시. 퇴근길 지하철에서 부석순의 신곡 <파이팅 해야지> 뮤직 비디오를 봤다. 후렴구 안무가 쉽기도 하고, 며칠 전에 틱톡으로 잠깐 공개도 됐어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적 댄스를 췄다. 한 곡이 끝나니 후렴구 춤이 얼추 익혀졌다. 집 가서 챌린지 영상 찍고 싶었지만 나는 그럴 깜냥이 되지 않으므로 그냥 조용히 하단바를 처음으로 되돌려 뮤직 비디오를 다시 시청했다. 아, 좋다. 원래 퇴근할 때는 수산 시장에 놓여진 대야처럼 멀뚱하고 속절없이 앉아 있기만 했는데 오늘은 부석순 덕분에 힘찬 에너지를 머금을 수 있었다. 파이팅 해야지. 파이팅 해야지.
오늘은 2월의 첫 월요일. 그러니까, 운동을 시작하기에 제격인 날이었다. 마지막 만찬으로 리틀넥의 버섯크림스테이크리조또 밀키트를 만들어 먹은 뒤, 옷을 갈아 입고 오랫동안 돌돌 말려 있던 요가 매트를 펴고 숨 쉴 구멍을 줬다. 매트 위에 올라가서 몸을 가볍게 푼 다음,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파이팅 해야지> 뮤직 비디오를 다시 틀었다. 안무를 모르는 부분은 막춤을 췄고 후렴 부분은 힘있게 췄다. ‘난 지금 부석순이랑 챌린지하고 있는 셀럽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춤을 추던 도중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노래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별안간 눈물이 터진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레깅스와 기능성 티셔츠를 입고 요가 매트 위에 서서 훌쩍이는 여성이 됐다. 나 왜 울었지? 이 노래 왜 슬프지? 그건 <파이팅 해야지>의 경쾌한 리듬과 시원한 보컬 속에 살짝 묻힐 뻔한 비애 때문일 것이라고 (감히) 짐작한다.
노랫말은 ‘아뿔사’(원래 가사는 ‘X됐다’라고 한다)로 시작한다. 화자는(그리고 청자는) 아침잠이 부족하며, 인스타그램 스토리 속 잘 사는 친구들과 자신의 초라함을 견주어 본다. 아등바등 현실에 치여 사는 ‘좀비’ 같은 화자. 이 친구의 비애가 나에게도 전이된다. 맞아 나도 딱 저래. 어쩜 내가 생각하는 거랑 똑같지. 당연하다. 이미 화자는 이 기분을 ‘우리’가 같이 느끼고 있다고 일러주고 있다. (우린 다 이어폰 꽂은 좀비 등의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화자는 우리의 처지를 더 이상 비관하지 않는다.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라고 말하며 케케 묵은 감정을 훅훅 털고 힘을 쥐어 짜내서 “파이팅 해야지”라고 외친다. 힘을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슬프고, 어떻게든 힘을 내려고 하고 노래를 듣는 청자에게 힘을 내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감정 이입이 돼 슬프고, 결국엔 ‘진짜로’ 힘을 내게 되는 화자를 보며 뭉클해지고, 그 힘이 나에게까지 전이되는 이 모든 과정에 대한 모종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너만 힘든 게 아니라고, 우린 전부 다 힘들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같이 힘을 내야 한다고. 사실 이미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힘 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더 글로리’ 문동은처럼 “힘 내는 것도 힘들어”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하지만 부석순은 다르다. 이들의 위로엔 유머가 깃들어있다. 건성으로 하는 위로가 아니라 진정성이 가득 담긴 위트. 흡사 세뇌 같은 위로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나도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것이다. 파이팅 해야지. 이렇게 되뇌다 보면 정말로 힘이 난다. 그 힘으로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더욱 씩씩해질 내일을 낙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