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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Oct 24. 2022

쉐어하우스의 기쁨과 슬픔

사회 초년생의 서울 적응기



 면접 합격 소식을 듣고 어플을 통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으로 원룸은 택도 없어서 일단 쉐어하우스에 들어가기로 했다. 낡은 빌라였지만 안은 깨끗하고 넓었다. 입주한 다음날 첫 출근을 했다. 회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고, 8명이서 같이 사는 공간이지만 다들 인사도 하지 않았다. 대학생 때도 내내 자취를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외롭진 않았었다. 나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친구들에게 서울 너무 외롭고 무서운 곳이라고 투정부렸다. "내가 바라던 곳이야 흔들리지 않게 마음을 잡아"하는 노래 가사를 단단히 붙잡았다.


 입주한 지 한 달 정도 흘렀을 때, 옆방에 사는 L이 말을 걸었다. 나와 동갑인 L은 영화 CG 제작하는 일을 한다. 나는 감탄을 하며 수줍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됐다. 서울에서 만든 첫 친구였다. L과 말을 트자 쉐어하우스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수월해졌다.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고, 드라마를 같이 보고, 청소를 같이 했다. 아이돌 연습생 숙소 같다고 생각했다. (살아본 적 없지만)


 L이 원룸을 구해 퇴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이 바뀌었다. 새 주인은 외국인을 마구 들였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기 위해, 여행을 하기 위해, 인턴십을 하기 위해 서울에 온 외국인들이 모였다. 프랑스계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미국인, 중국인 등 국적도 다양했다. 처음엔 공짜로 영어 리스닝과 스피킹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생각을 철회했다. 외국인들은 분리수거를 하지 않았고 시차 적응을 못 해서 새벽 3시까지 거실에 모여 떠들었으며 화장실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았다. 나는 다시 밥을 혼자 먹게 됐다.


 쉐어하우스에 살면서 화내는 법을 배웠다. 나는 생각이 많고 소심해서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해도 그럴 이유가 있겠지, 하며 이해하고 참았다. 외국인들이 새벽에 떠들 때도 '먼 타국까지 와서 얼마나 힘들겠어.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랑 할 얘기도 많겠지. 방해하지 말자'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참을 수 있는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 나는 거실로 나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머리카락을 치워 달라고 번역기를 써서 얘기했다. 분리수거해주세요, 현관문을 꼭 닫고 다니세요, 찬장에 있는 물건 제 거니까 건들지 말아주세요. 이런 문장을 적고 번역기를 돌려 단톡방에 얘기했다. 영어 실력은 하나도 안 늘고 번역기 사용 빈도수만 늘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상경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쉐어하우스에 세 달 정도 살아보는 걸 추천한다. 최대 장점은 친구를 만날 수 있고 저녁에 적적하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L에게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고, 그가 작업한 영화를 같이 보러 가기도 했다. 귀한 인연이다. 그가 있어서 나는 이방인이 아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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