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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Oct 12. 2022

시작, 시작(詩作)

시를 들여다 보는 마음으로


 시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건 대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국어국문학과 복수 전공을 이수하기 시작한 첫 학기에 시 창작 수업을 듣게 됐다. 태어나서 한 번도 시를 써 본 적 없는데, 오티날 다음주까지 시를 한 편 써서 내라는 충격적인 과제를 받게 됐다. 시집을 사서 읽어본 적도 별로 없던 나에게 큰 시련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시를 한 편 써서 냈다. 제목은 <그의 계절>. 지금 생각하면 이토록 감상적일 수 없는 시였다.


 시를 제출하고 이틀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학보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 시를 학교 신문에 싣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교수님이 내 시를 학보사에 넘긴 거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글을 써서 돈을 받게 됐다. 그때 받은 원고료 4만 원은 당연히 써버렸지만, 그때의 감정만큼은 소모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내 시를 학우들 앞에서 낭독하고, 교수님이 내 시를 분석해 주는 게 좋았다. 내 시가 이런 의도를 갖고 있구나. 내 시에서 이런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구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세계였다. 나는 시를 조금 더 잘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전부 다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그 뒤로 나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매주 합평에서 신랄하게 까였으며 아주 작은 공모전에도 당선되지 못했다. 신춘문예는 당연히 낙방이었다. 문창과 학생에게 온라인으로 과외도 받고, 시인에게 시 수업도 받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내 시는 그렇게 저물었다.


 쓰는 일과 함께 읽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시집만 200권 넘게 읽었다. 그냥 시에 미쳐 살았다. 나는 시를 잘 모르면서도, 아니 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그렇듯, 깊어지면 망하기 마련이다. 나는 여전히 시를 사랑하지만 내가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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