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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흙표범 Mar 21. 2023

어쩌다 영상통화 상견례

부제 : 막둥이 여동생의 선물

나만 빼고 모두가 다 바빠 보였다.

세차장 주인은 가을 환절기라 비염증세가 심해졌는데,

우리 부모님 앞에서 코를 훌쩍거리면 안 된다며 매일 이비인후과에 들락거렸다.  

우리 엄마는 바닷가 지방에 왔으니 제철 해산물은 먹어야 한다며 가을전어를 준비하면서,

세차장 주인이 생선을 싫어할 수도 있으니 소고기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내 막내 여동생은 마침 그날에 주말 근무가 잡혔다며, 어떻게든 근무조를 바꿔보려고 이래저래 짱구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세차장 주인 어머님도 아들내미의 예비사위룩을 심혈을 기울여 쇼핑 중이셨다.  


항상 혼자 가던 고속도로를 누군가와 같이 간다는 건,

재미있지만 뭔가 복잡 미묘했다.

고속도로 휴게소 간식을 두배로 다양하게 사서 나눠먹고,

끊임없이 세 시간 반을 얘기하는 건(그것도 조수석에서 편하게) 참 흥겨웠다.

하지만 내 본가에 가까워질수록 20년 넘게 살았던 집에 이 사람이 들어가서

부모님을 만나고, 외삼촌을 만나고 그런 건 뭔가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직접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빠, 엄마는 현관 앞에 강아지처럼 서있었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

문이 열리자마자 부모님은 한껏 웃으며 박수까지 치며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싱크로율이 딱 맞았다. .

"만세!!!" 아빠는 입으로 만세를 외치고 두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입을 삐쭉거리며 한마디 했다.

"아니, 철저한 검증절차는 없어? 우리 딸 어디가 좋냐, 집은 준비돼 있나? 뭐 그런 걸 물어야지"

엄마는 바로 내 등짝을 때렸다.

"이 나이에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우린 무조건 OK야!"

그렇다. 세차장 주인은 출생 연도는 나와 같지만 나보다 생일은 6개월 어린 나름 '연하'였다.


평소 세차장 주인은 해산물은 비린내가 난다고 고등어도, 멸치도 잘 먹지 않았지만

엄마가 먹어보라고 얹어준 전복 내장을 "맛있네요"라며 꿀꺽꿀꺽 삼켰다.

이게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남자가 인사드리러 가서 밥 먹는 정답지구나' 싶었다.

엄마 아빠는 이미 세차장주인을 새로운 가족처럼 대했고,

정말이지 우리 집에 와 준 것 만으로 고마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질문은 별로 없고, 나도 못 받아본 하트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걸 보면.


저녁을 먹고 술도 한잔해서 알딸딸하게 9시가 지났을 무렵,

뜬금없이 우리 아빠가 물었다.

"지금쯤 자네 부모님은 주무실 시간인가?"  

"아니요. 일찍 주무시긴 하시는데요, 지금은 안 주무실 것 같아요"

엄마는 반색을 하며,

"아 그래? 그러면 영상통화 한번 하면 어떨까? 많이 실례이려나?"

"실은, 저희 부모님께서도 영상통화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 인사 갔다 와서 상견례한다고 또 만나는 게 번거로우시면, 그냥 제가 여기 온 김에 영상통화로 상견례 하자고 하시긴 했어요"

세상에... 상견례라니... 그것도 이 밤에 영상통화라니... 부모님들 생각도 똑같다니...

내가 약간 알딸딸한 사이에 내가 끼어들 틈이 없이 뭔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세차장 주인은 이미 아빠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버지! 통화가능하세요? 저 흙표범이랑 표범이 부모님과 같이 저녁 먹고 있어요"

"아~~ 아들!! 지금 자려고 누웠는데, 10분 있다가 다시 전화해라. 옷 좀 다시 차려입고 다시 통화하자"

그사이 우리 엄마도 화장실에 들어가서 머리에 물을 묻히고 빗질도 한번 하고는,

"자 10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다시 전화해 볼까?"

"예!"

그렇게 시작된 영상통화는 10분간 진행됐다.

코로나 시대에 업무적으로 영상회의는 많이 해봤어도,

세차장 주인이 핸드폰을 들고 우리 쪽에서 4명이, 세차장 주인 부모님 2명이 함께 참여하는 대화라니...

두 부모님은 인상이 좋으시다는 서로의 칭찬으로 영상통화를 시작하셨다.

우리 얘기도 하시며 시간을 보내시다가,

마무리 멘트로 '이걸로 상견례를 대신하자고' 합의하셨다.

이렇게 쿨한 70세 부모님이라니...


전화를 끝내고 엄마가 신난 것 같으면서도 약간 재촉하듯이 말했다.

"그래, 상견례도 끝났으니, 올해 안에 결혼해라. 이미 나이도 많은데 더 늦을 필요 있겠나.

근데, 너도 알다시피 아빠 무릎이 이젠 더 이상은 못 견뎌서 12월쯤에 무릎수술을 할 거거든,

수술하면 최소 6개월은 재활을 해야 한다더라. 그러니 아빠 수술 전으로 날 잡아.

참, 그것도 알지? 막내가 자기 시집 식구들이랑 11월 중순인가 말인가 해외여행 간다던데. 그래도 결혼인데 막내도 와야 하니깐 그 날짜도 피해야겠네"


오늘이 9월 17일인데...

한우선물세트 사준 남자 친구를 집에 인사시키러 갔다가,

결혼날짜까지 받아와 버렸다. 올해 안에 하되, 안 되는 날짜는 언제 언제라는 식으로.


결국 근무조를 못바꿔서 전화로 영상통화 상견례 소식을 들은 막내 여동생은,

뭔가 빼박 못할 상황을 만들려는 듯했다.

"내가 결혼선물 미리 해줄게. 형부 사업장에 뭐 필요한 거 없어? 개업한 지 얼마 안 됐으면 아직 손이 많이 가지 않나?"라며 내가 아니고 굳이 세차장 주인에게 선물을 준단다.

여동생은 내가 30년을 키운 은혜와 10년 넘게 나에게 빌붙어 해외여행을 다닌 빚을 이걸로 갚는것 같았다.

내가 분유먹여 키운애가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 이렇게 어른노릇까지 한다니.



이랬었는데... 돈 300만원에 이렇게 바뀌었다.

< 두둥~ 고맙다 동생아! 우리끼리만 아는 이름이었는데, 덕분에 누구나 알 수 있게 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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