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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흙표범 Mar 23. 2023

결혼, 이렇게 쉬운 거였어?

부제 : 인생 2막은 자영업자 안주인으로.

'나보다 예쁘지도 않고, 저런 사람도 갔는데'


주말에 혼자 마트에 가서,

맞은편에 부부가 같이 끄는 카트를 봤을 때,


혼자 탄 비행기에서,

커플티를 입은 신혼부부를 봤을 때,


직장에서 야근을 해야 하는데,

육아를 걱정하는 워킹맘을 보며,


결혼이 하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안 될 때는

미안한 얘기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도 있었다.

"뭐? 애 둘을 데리고 총각이랑 또 결혼을 했다고?"

나는 한 번도 못 갔는데, 누가 두 번이나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욱하는 성격이 폭발해 버렸다.


어린 시절 나의 뾰족한 성격 때문에 상처받은 소개팅남들의 '저주'라고 받아들이며 '혼자살 결심'까지 했었는데.

3개월을 만나고, 부모님께 처음 인사드리는 날에 영상통화로 상견례까지 한큐에 끝내버렸다.

결혼이란 게 이렇게 쉽게 진행될 수 있다니.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실감도 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내가 'no'를 하지 않는다면, 진짜 곧 결혼이란 걸 하게 될 것 같았다. 


세차장 주인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지만,

꼭 이 선택을 해야 할지 최종점검에 들어갔다.


1. 착하고 자상하고 부지런한가?

세차장 주인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고된 하루를 보냈어도 내가 저녁에 달리고 싶다고 하면 옆에서 러닝 메이트를 해주고,

아침 7시 ktx를 타야 할 때는 오송역까지 기사노릇을 자처하며 오히려 나에게

"옆에서 눈 좀 붙여"라고 해주며,

일요일에 출근한 나를 얼굴이라도 보려고 저녁 8시까지 기다렸는데,

'5분' 만나고 내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어도 이해해 주는

이런 배려와 헌신이 그래도 좀 지속되진 않겠나 하는 희망 섞인 마음이 있긴 하다.

 

2. 지금 내가 다리 아프고, 배고픈 상황이 아닌가?

"다리 아플 때 의자 고르는 거 아니고, 배고플 때 마트 가는 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결혼을 결정했어"

주변에서 본인들의 결혼을 후회하는 푸념을 하며 종종 들었던 말이다.

내가 그동안 혼자 있는 아주 외로운 시간을 보냈어도,

명확한 건 세차장 주인에게 덕을 보려는 마음은 1도 없고,

그와 함께 있는 그 시간이 어느 누구와 있는 것보다 재미있고, 편하다는 것이다.

'인생 뭐 있나. 같이 살아보고 싶은 사람하고 한 번 살아봐야겠다' 싶었다.


3. 절대 안 되는 조건 1가지에 해당 하나?

30년 지기 친구는 '내가 결혼할까' 생각 중이라고 하니

근무시간 중 초치기로 일을 하는 상황에서 엑셀표 하나를 뚝딱 그려서 보냈다.


아주 늦은 나이지만, 가능하다면 '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있고 ,

'게으름'과 '잘난 척'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의 배제 조건에 해당되지는 않으므로,

순서도를 따라가면 '결혼'이긴 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은

사람들이 '우와'하는 걸 쫓아가기보다는

내가 '진짜 행복해하는 쪽'을 선택하며 살았던 것 같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아무 생각 없이 '힘 있는 기관'을 선택했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나의 흥미에 맞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상당히 힘이 들었다.

결국에는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힘이 없는 기관'으로 근무처를 옮겼다.


석사 유학을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와 중간정도 레벨의 대학에 동시에 합격을 했는데,

내가 선택한 학교는 명문대가 아니었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명문대 졸업장을 위해서

나의 소중한 2년의 시간을 모두 학교수업에만 몰빵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세차장 주인과 함께 있는 시간에서도 내가 진짜 행복을 느끼기에

결혼이란 걸 드디어 한번 해보려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바라는 거 없고, 너희 둘만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

양가 부모님이 똑같이 하셨던 말씀을 듣고

내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금 통장에 딱 500만 원 있는데,  예단이라던가 뭐 그런 허례허식을 안 해도 되겠다.'였다.


결혼을 하게 될 줄 모르고 혼자살 준비로 작은 아파트를 꼭지에 영끌로 사버려서

말라버린 통장잔고를 보며

'아무리 줄여도 과연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을지' 현실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타이밍이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세차장 주인에게

"나 500만 원 밖에 없는데, 넌 얼마 있어?"라고 물어보니,

"나도 500만 원 정도밖에 없어" 이게 바로 부부의 연 인지... 잔고마저 똑같았다.  


아파트 영끌 때문에 500만 원만 있는 41세 여자와,

초기 사업자금으로 다 써서 500만 원만 있는 41세 남자가

결혼이란 걸 준비해 보려 한다.


자금 부족으로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진 않겠지만,

그래도 트렌트를 익히는 차원으로 주말에 백화점을 가기로 했다.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도 아니고,

3층 여성복 매장도 아닌,

생전 가보지도 않았던 8층 주방 & 침구매장을 가려는 내가 너무 낯설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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