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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흙표범 Apr 19. 2023

무늬만 스몰웨딩

부제 : 결혼식의 순기능

"난 결혼식 안 해도 괜찮아, 웨딩촬영도 필요 없어"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40대라지만, 나는 쿨하다 못해 결혼식에 대한 로망도 없었다.

30대 후반부터 결혼이 하고 싶었지만, 내가 원한 건

'결혼식'이 아닌 '결혼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는 건 그동안 불순했던

나의 태도 때문이기도 했다.

솔직히, 십 수년간 수많은 결혼식에 매번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참석한 건 아니었다.

세금 고지서처럼 받아들인 청첩장을 들고서- 눈도장을 찍은 후- 밥 먹으러 직행한 결혼식도 많았어서, 그렇게 참석했던 '결혼식'을 내가 준비해서, 예전의 나 같은 손님들을 초대할 마음이 있을 리 없었다.

 '국적 불명'(신부 드레스는 서양식/엄마는 한복/손님께 인사하고 폐백 할 때는 다시 한복),

'공장형 웨딩'(30분도 안 걸려 부부 한쌍이 탄생)에 뭘 그리 돈을 쓰고, 시간을 써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간단하게 라도 결혼식은 해야 하지 않나?"

"두 번째 결혼하는 사람도 드레스 입고 결혼식 하는데, 도대체 뭐가 모자라서 안 한다는 거야?"

"평생 한 번인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


에코, 엄마, 여동생은 각자의 언어와 세기로 나를 설득했고, 며칠간의 실랑이 끝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난 분명히 안 해도 된다고 했었다.

막상 뭘 하게 되면, 요구조건이 까다롭고,

확실히 하는 내 성격이 또 나와버렸다...

만난 지 3개월밖에 안된 에코는 몰랐겠지.

이 정도일 줄은.


우선, 우리가 가진돈과 2개월도 안 되는 준비시간을 고려해서,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는 건 과감히 생략했다.

사람을 못 믿는 성격으로, 웨딩플래너 없이 스스로 준비하면서.

 

예단, 폐백은 생략, 신혼집과 예물은 간단히 끝냈다.

전세계약이 아직 8개월이나 남은 내 집으로 에코가 큰 침대를 하나 사서 들어오기로 하면서, 신혼집과 가구를 끝냈다.


예물은 행여나 밖에서 싱글행세를 하지 못하도록  평소 끼고 다닐 정도의 가격과 크기로 반지 하나씩만 하기로 했다.

어떤 동료는 나에게 

"5급 공무원이면 알이 큰 반지는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슬슬 긁었지만, '저러니 아직 못 간 거 아닌가' 속으로 생각하며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결혼식이었다.

"평생 한 번뿐인데"

현명한 소비자라고 자부하던 나도,

웨딩산업을 지탱하는 그 유혹의 말에  빠지고 말았다.


공주놀이를 하는 웨딩촬영은 분명히 안 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모바일 청첩장을 만드는 와중에 둘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어서 급하게 옷장에 있는 원피스를 입고 집 근처 천변 산책로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사로는 끝나고 선짓국 한 그릇을 대가로 아직 싱글인 에코 대학 선배를 섭외했다.


드레스도 분명히 처음에는 저렴한 걸 찾았었다.

'한번 입는 거 비싼 거 입을 필요 있나?'라는 생각에 10~20만 원짜리 셀프웨딩 드레스를 대여하러 갔으나,  '내가 이거 아끼려고 십몇년간 돈 벌었나' 생각이 들면서,  결국엔 급행료까지 내고 식 한 달 전에 부랴부랴 대전에서 가장 큰 드레스샵 고객이 되었다.


종이 청첩장도 분명히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걸 알게 된 친한 동료가 청첩장을 달라길래 종이 청첩장은 안 할 거라고 했더니, 또 훈수를 뒀다.

"종이 청첩장 안 뿌리면, 직장에서 축의금은 수거 못한다고 봐야 해. 친한 사람들은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면 되지. 종이 청첩장은 어정쩡한 관계에서 필요한 거야. 카톡을 보낼 수도 없으니"

아직 미혼인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싸해서,

결혼식을 2주 남겨놓고 종이청첩장을 찍었다.


받을 땐 몰랐다.

날짜 확인하고- 계좌번호 찾아보고- 덮었던

그 청첩장 문구 하나하나에 고민과 정성이 들어있다는 것을.

< 에코가 나를 먼저 좋아했다는 사실을 남기려는 나의 의도&                더이상의 떠돌이 생활은 끝낸다는 의지를 나타낸 문서>

혼식은 안 해도 된다던 내가,

뻔한 예식장이 아닌 스몰웨딩 장소를 찾으려고 레스토랑, 캠핑장 등 이색장소  8군데를  돌아다녔다.

스몰웨딩이지만 친지 어르신들을 고려해서 한식 식사까지 생각해야 하는 가장 까탈스러운 여정이었다.

결혼식을 포기할 뻔한 찰나에 맘에 드는 펜션 찾았고, 흔치 않게 산속 펜션을 하루 빌려서 펜션 잔디밭에서 많은 신부의 로망이라는 '야외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은 여러 사람들의 손을 빌리는 이었다.

사회자와 축가는 에코의 가장 친한 동생들이,

사진기사는 에코의 대학 선배가,

동영상 촬영은 에코의 절친들이,

주례를 대신하여 양가 아버님들은 덕담을,

나의 11살 어린 여동생은 큰 언니가 드디어

결혼하는 기쁜 마음을 편지로 낭독했고,

펜션에 주문한 바베큐 만으로는 모자랄까 봐

우리 엄마는 홍어와 갓김치를 손수 무쳐왔고, 

시어머니는 떡을 맞춰오셨다.


이렇게 많은 도움으로 진행된 결혼식 마무리로

에코는 산속 펜션까지 오신 손님들께 감사를 표현했고,

마지막으로 나도 마이크를 잡고,  에코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만천하에 알렸다.



결혼식에 표준이란 건 없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결혼식을 '검정고시'처럼 치렀다.

보통은 3년간 학교생활을 해야 졸업장을 받지만,

시험 한 번이면 되는 검정고시처럼,

남들보단 조금 짧고 간단하게,

5주 준비해서, 100명 미만이 모여 스몰웨딩을 했다


'결혼식'에 대해 회의감을 가졌던 내가 느낀

그 '의식'의 순기능은

나에게 결혼했다는 자각을 준다는 것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직장사람들의

"잘 다녀왔냐"는 인사에서,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너 결혼식 때 ~~였어"라고 회고할 때,

나는 내가 '결혼'을 했다는 걸 인지하곤 한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약간은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보다 흥이 많고 자유로운 영혼인 나에게는 이런 '낙인'효과가 필요했고,

일반적인 형식과는 조금 다른 결혼식이었지만,

예쁘게 차려입은 새 식구를 친적들에게 인사시키는

자리를 갖고 싶었던 부모님의 희망을 보더라도,

내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보더라도

'그래도 그 의식을 하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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