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도장이 내 마음에도 찍혔다.
선거를 앞두고 집으로 날아든 공보물, 동네 곳곳에 붙은 선거 벽보, 그리고 남편과의 대화 속 후보자 이야기까지. 자연스레 다섯 살 첫째 아이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통령이 누구야?"
"엄마는 누가 좋아? 왜 좋아?"
"이 사람은 늙었고, 이 사람은 젊었어. 이 사람은 얼굴이 왜이렇게 커?"
다섯 살이 뭘 알겠나 싶다가도 '삶이 곧 교육'이라는 말처럼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알려주면 안될 것 같아 대통령, 선거, 투표 관련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대통령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대통령이 되는지, 대통령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
선거는 무엇인지, 선거의 종류는 무엇인지, 유세, 공약이란 무엇인지, 선거할 때 지켜야하는 네 가지 원칙 등
이런 내용들은 사실 다섯 살 아이에겐 어려워보여서 간략하게 설명만 해주었지만, 투표와 관련한 내용은 조금 더 쉽고 재밌게 써져 있었다.
원하는 것을 골라서 뽑는 걸 '선택'한다고 해
여럿이서 무언가를 선택해야할 때도 있어
선택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정할 수 없어
달라지기 원한다면 선택을 해야해
선택에는 결과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거든.
선택한 것에 표를 주는 일을 '투표'라고 불러
원하는 대표를 뽑고 싶다면 꼭 투표를 해야해
모두의 한 표가 미래를 바꿀 수 있어.
그와중에 아이는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자긴 이 사람이 좋다고 우리에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사람이 머리스타일이 깔끔해서 좋은거 같아. 일도 잘하지 않을까? 엄마도 꼭 0번 뽑아"
AI들에게도 물어봤다. 다섯 살 아이에게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알려줘야할 핵심 가치가 무엇이냐고.
챗gpt는 말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어른들이 책임있게 선택하는 과정" 이라고 (함께 사는 세상, 소중한 선택, 서로 다름을 존중하기)
제미나이는 "모두의 소중한 생각(의견)이 모여 우리를 위한 큰 결정을 한다"라고 했다.
(나의 중요성, 우리의 이해, 민주주의의 씨앗, 참여의 의미)
하나하나 의미있는 말들이었다. 아이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었다.
사전투표가 있던 이틀동안 사람들이 줄줄이 투표장소로 들어가는 걸 보고 아이에게 계속 말했다.
"아현아 봐바, 다들 저렇게 투표하려고 들어가는거야! 너도 크면 꼭 투표해야해?!!"
본투표날엔 함께 투표장에 들어가서 선거 과정도 보여주었다. (비밀 투표라고 해놓고 누굴 찍는지까지 보여준 건 잘못한 것 같지만서도...) 서로의 손바닥에 찍고 나온 도장이 괜히 뿌듯했다. 엄청난 걸 알려준 것 같은 이 뿌듯함을 안고 함께 투표 인증샷도 찍었다.
남편이랑은 과연 누가 몇 퍼센트의 지지율로 당선될 것인지 내 사심을 담은 내기도 했다. 투표가 끝나고 우리 가족은 밖에 나가 신나게 놀다 들어왔고 선거가 종료된 여덟시가 넘자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엄마, 1번이 대통령 된거야?"
"아직 확실한건 아닌데 그럴 가능성이 크대"
그 후 아이들을 재우다 남편과 나도 그대로 곯아떨어졌고 다음날이 되서야 확실한 대통령 당선 소식을 듣게 됐다. 남편과의 내기에서 졌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도 함께.
"와 말도 안돼, 어떻게 0번 후보 지지율이 이렇게 많이 나왔을 수가 있어? 난 다들 나랑 같은 마음일 줄 알았지!!, 와 이정도면 나랑 이 나라랑 안맞나봐"
나의 바람은 산산히 부서졌고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의견과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남편은 말했다. "결과를 받아들여야지. 세상엔 나와 다른 사람이 참 많다는 거 그동안 투표하면서 많이 느끼지 않았어?"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 생각이 보편타당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아니였다...
아이에게 민주주의와 선택을 가르친다고 했지만, 나야말로 제대로 배웠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기"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이번 선거를 통해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