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띠 하나가 알려준 따뜻한 말의 힘
평범한 주말 오후, 아이들과 함께 다이소에 들렀다.
첫째의 유치원 과제인 우주선 만들기를 위해, 색종이와 스티커 같은 꾸미는 재료들을 사러 간 길이었다.
남편은 아이들과 가게를 돌아다니고, 나는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머리띠 진열대 앞에서 한 아이가 엄마를 불렀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엄마, 나 이거 사고 싶어!”
무심히 듣고 있던 내 귀에, 이어지는 엄마의 대답이 또렷하게 박혔다.
“그래? 그럼 사면 되지.
우리 딸은 뭘 해도 다 예쁘니까
이것도 잘 어울리겠다.”
그 짧은 대답에 순간 굳어버렸다. 한동안 머리띠와 그 엄마를 번갈아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레이스가 쭈글쭈글 달린 머리띠는, 내 눈엔 도무지 예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는 ‘예쁘다’고 말해줬다. 진심일까? 아니면 아이를 위한 배려일까?
내 눈엔 저렇게 별로인 물건을, 어찌 저리 아름다운 말로 긍정해 줄 수 있을까.
내 아이가 저 머리띠를 집어들었다면 나는 과연 뭐라고 했을까? 여러 가지 말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엄마 눈엔 이건 별로 안 예쁜 것 같아.”
“이건 좀 과하지 않아? 너무 화려하잖아.”
“이 옆에 있는 게 더 예쁘지 않아?”
그래도 아이가 굳이 그걸 고집한다면, 나는 또 이렇게 말했겠지.
“집에 머리띠 많잖아. 평소에 잘 안 하잖아, 그치?”
“오늘은 그냥 머리핀 하나만 살까?”
“다음에 오로라핑 머리띠 있으면 그걸로 사줄게. 오늘은 이건 안 사는 거다, 응?”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떻게든 돌려 말하거나, 결국은 안 된다고 했을 것같다. 그 엄마처럼, 아이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예쁘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말은 내 경우의 수에 없었다.
'나는 저런 엄마가 될 수 없는 걸까?'
'저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얼마나 자존감이 단단할까?'
단 돈 2000원에 저 엄마는 아이에게 어마어마한 가치를 선물하는데 나는.... 괜히 마음이 저릿했다. 지금까지 내 말 한마디, 내 표정 하나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며칠 뒤, 또 한 번의 사건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녀오는 길, 둘째의 상처에 바를 연고 하나를 추가로 샀다. 그런데 아무리 집 안을 뒤져봐도 연고가 보이지 않았다.
“아현아, 엄마 진짜 멍청이인가봐... 분명 샀는데 연고가 없어. 엄마는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 걸까. 이런 내가 정말 싫다...”
속상함에 자책을 퍼붓고 있는 나에게, 딸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엄마, 연고가 소중해? 엄마가 소중해?”
“어? 당연히 엄마가 소중하지.”
“근데 왜 연고 때문에 그렇게 말해? 나도 엄마가 소중한데... 항상 소중한게 먼저라며?! ”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금 서현이 연고 못 발라줘서 속상해서 그랬어…”
“엄마, 연고는 나중에 발라도 돼? 안 돼?”
“...그래, 나중에 발라도 돼.”
“그럼 화내지 마. 엄마가 화내면 나도 속상해.”
또 한 번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다섯 살 아이도 아는 걸, 나는 몰랐다. 나는 내 말과 표정이 아이들의 마음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쏟아내는 말의 무게를 다시 한번 깨닫고, 내가 내뱉는 말들을 필터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 기준으로 쉽게 내뱉는 말들이 너희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날 너희에게 힘이 될 자양분이 되도록 말하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를 마무리할 때 묻는다.
"아현아, 오늘 엄마가 했던 말 중에 속상한 말 있었어?"
예쁜 말들을 배워 아이들의 귀에, 그리고 내 귀에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엄마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