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모를 벗어던진 아이에게 배운 한 가지
첫 수업에서 울먹거리던 아이가 두 달 만에 수영장에서 웃고 있다.
처음엔 그저 물과 친해지기만을 바랐다. 수영 실력을 바라기보다는 물이 무섭지 않길, 낯선 환경에서도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우리 딸은 아직도 수영장에서 놀고 있다. 수모도 수경도 벗어던지고, 물 밖으로 얼굴만 내민 채 해맑게 개헤엄을 친다. 그저 자기가 수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즐거운 눈치다.
그러던 중 얼마 전, SNS에서 친구가 올린 영상을 보고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우리 아이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아이의 수영 기록 영상이었는데, 자유형을 부드럽게 하고 배영까지 배우고 있었다. 자세도 좋고, 숨 쉬는 것도 여유로워 보였다.
놀라서 수영 선생님께 여쭤봤다.
"대여섯 살 아이가 수영을 잘 하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요?"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두 달 강습한 아이 중엔 키판 잡고 팔 돌리기까지 하는 아이도 있는데요, 어머님 친구 아이는 특별히 잘하는 편이에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우리 아이도 곧 음파라도 배우겠지. 아이마다 속도는 다른 거니까.
하지만 그 다짐도 오래 가지 않았다.
수업 시간, 함께 배우는 또래 아이들이 물속에 들어가 장난감을 멀리서 척척 가져오고, 수경을 단단히 고쳐 쓰며 잠수까지 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또 마음이 스멀스멀 복잡해졌다. 그 옆에서 우리 딸은 여전히 수모도 수경도 벗어던지고, 얼굴만 내민 채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 오늘따라 수영 선생님께서 환복까지 마치고 함께 나오셨고, 두 엄마가 다가가 물어보는 대화가 들렸다.
“우리 00, 수영 실력은 좀 어떤가요?”
“진도를 좀 나가보는 건 어떨까요?”
두 아이는 확실히 우리 아이보다 한참 앞서 있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 레인에서 진도를 나가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말을 하셨다.
귀를 쫑긋하고 있던 나도 슬쩍 물었다.
“선생님, 아현이는 아직은 무리겠죠?”
선생님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 어머님. 아현이는 아직…”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꽤 잘하는 아이였다. 학교 운동부 제의도 받았고, 운동이라면 자신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내 아이도 그럴 줄 알고 있었다. 놀이터 트램폴린에서 점프하는 아이를 보며 ‘역시 나 닮았네’라는 말을 수백번은 외쳤을거다.
그런데 수영을 잘하고 싶은 의지가 없어 보이는 아이를 보니, 괜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그 순간, 선생님 옆에 있던 우리 딸이 선생님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선생님, 오늘도 진짜 진짜 재밌었어요!”
두 눈에 하트를 뿅뿅 달고 선생님을 바라보는 딸.
그리고 그런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선생님의 얼굴.
그 장면에,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 내가 진짜 바란 게 뭐였더라.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수영을 즐기고 있는 아이.
선생님과 신나게 수업을 하고 수영장에 가는 걸 기대하는 아이. 그 모습이면 충분했던 거 아닌가.
생각해보니, 나 역시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을 좋아하면 그 과목을 더 열심히 하곤 했다. 결국 어떤 일을 잘하게 만드는 힘은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걸 겪으며 커온 나였다.
얼마 전 내가 즐겨보는 교육 유튜브에서 들은 말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기준에 맞춰 내 아이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흔들리는 엄마다.
이 집 이야기, 저 집 이야기 들으며 쉽게 마음이 휩쓸린다. 하지만 그런 나를 단단하게 붙드는 건 결국 아이의 말과 행동이다.
우리 딸이 수업이 끝나고 오는 차에서 말해주었다.
“엄마, 나 수영 너어무 좋아서 오래오래 배울거야.”
그 한 마디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