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날, 모든 시간은 멈췄다.

2019년 가을, 산부인과 진료실 그리고 어둠의 문턱

by 제이

산부인과 병원에 가는 날,
밖은 제법 선선한 가을 공기가 돌고 있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마치 축복처럼 찾아온 아이의 소식에
우리는 매일을 감사함으로 채우고 있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듯,
2주에 한 번씩 초음파 검사를 받으며
나는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아
그 설렘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그렇게 세상은 따뜻하고 긍정적인 곳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토록 끊기 힘들다던 담배조차

한순간에 끊어버렸다.


부부가 나란히 마흔을 넘긴 나이에 아이가 찾아오는 경우는,

세상이 말하는 '노산'이라는 말 앞에서

언제나 조심스럽고 경솔하지 않고 긴장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날도

늘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초음파 검사 날이었다.

"아빠 들어오세요"

낯익은 진료실, 익숙한 초음파의 기계음.

그리고 들려오는 또렷한 심장소리.


"쿵쾅쿵쾅 쿵쾅 쾅쾅쾅 쾅.."


그 소리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소리이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벅참과 기쁨과 슬픔이었다.

그 심장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먼저 났다.
행복해서인지, 벅차서인지,
아니면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날도 늘 하던 초음파 검진이 끝나고,

나는 먼저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급히 무언가를 들고 교수님 방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XX 산모님 들어오세요"

그런데 느낌이라고 할까?

호출되는 소리는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낮고 조심스러웠다.

역시,

진료실의 공기는 이전과는 다르게 무거웠다.

교수님은 모니터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한참을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음.. 아이의 머리가 조금 커요.”
“팔다리가 평균보다 짧은데… 머리 크기가 기준치를 많이 넘어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아이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유전이에요. 아이 아빠가 팔다리가 짧거든요, 하하…”


교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젓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니요, 단순한 유전이라 보기엔 수치가 조금 많이 벗어났습니다.
지금은 단정 지어 말씀드리기 어렵고, 우선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덧붙였다.
“물론, 반드시 하셔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정확한 결과를 알고 싶으시다면 양수 검사를 권해드립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교수님의 말은 순간, 우리의 시간을 멈춰버렸다.

“...”
“...”


머리가 크다? 팔다리가 짧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
내심 ‘크면 좋은 거 아닌가?’라는
어설픈 긍정으로 나는 나를 다독여보았지만,
'이상해요'라는 신호를 보내는 교수님의 표현이 너무나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내는 애써 태연하게 슬프지 않으려고 애를 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아내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떨림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교수님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양수검사에 대해 교수님 설명이 이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무서웠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손을 꼭 잡았다

'잠시만, 우리 함께 있잖아.. 서로 의지하고 용기 내자' 하는 암묵적 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은 15cm 정도 되는 주사바늘을

산모 배에 넣고 양수를 채취해 DNA를 검사한다고 했는데

이때 바늘이 아이를 조금이라도 건드리게 된다면

문제가 심각하더나 커진다고 말씀하셨다.


"꼭 그 방법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자 교수님은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정확한 방법입니다.

아니면 아이가 태어나야 확실히 알 수 있어요.”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러면 태어나면 확인하면 되는 게 아닐까요?"

라고 하자 아내는

"아니요, 그냥 할게요"

라며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는 게 좋겠다는 입장으로 나를 설득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아이가 머리가 큰 게 이슈가 되나요?"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자 교수님은

"단순히 큰 게 아니라… 평균 수치를 훨씬 넘어요.

팔과 다리 길이도 기준치보다 많이 짧고요"

"..."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은 비었고,
가슴 에선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만이 분명했다.

진료실 문을 나설 때까지,
우리는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여는 그 순간,
모든 감정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낯선 사람들로 북적이는 큰 병원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이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눈빛과 침묵 속에서
같은 슬픔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 없이

아내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 서로를 붙잡고 가자. 이거 놓지 말자..’

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내가 아내 손을 잡아줘야 하는데

나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날,

우리는 아주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동시에,

서로를 놓지 않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