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출렁이는 날

결과의 날과 희망 없는 날들

by 제이

이때부터 모든 일상은 정말 버겁고 무거웠다.

어떻게든 이 시간을 빨리 지나치게 만들고만 싶었다.


우리는 무작정 강원도 바다를 향했다.

글쎄,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보아도..

도무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냥, 어디든 멀리 가고 싶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저, 말없이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 필요했다.


가을의 강원도 바다는
햇살은 유난히 따뜻했지만
바람은 깊고 차가웠다.
잔잔해 보이던 수평선 위엔
쉴 틈 없이 부서지는 파도들이 있었다.

마치 우리 마음을 보는 듯했다.
겉으론 괜찮은 척 고요해도
그 안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이 출렁였다.


왜 이렇게 슬플까.
왜 이렇게 슬퍼야만 하는 걸까.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아내도 나도..

주변엔 웃음소리가 가득했지만,
우리만 슬퍼했다.
왜 우리만 이렇게 슬픔 속에 머물러야 하는 걸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더 슬펐고,
그 마음을 말할 수 없어 더 외로웠다.

그렇게,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2주 후,

다시 병원을 찾았고 익숙해진 초음파 정기검진을 받았다.
심장 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크고, 더 또렷했으며, 더 우렁찼다.
그 작은 생명이 보내는 신호를 듣고서 또 그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흘렀다.

"그래 내가 그런 생각들을 했어. 미안해..
머리 크고 팔다리 좀 짧으면 어때..

괜찮아 내 아가야~”

그 단순한 사실 하나가 가슴 깊숙이 밀려들어, 말할 수 없이 뭉클했다.


검사를 마치고,
양수 검사를 받으러 다른 방으로 갔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교수님을 다시 찾아가 부탁드렸다.

“교수님께서 직접 해주시면 안 될까요…”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15cm가 넘는 길고 날카로운 바늘이

천천히 아내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숨도 쉬지 못한 채
그저 누워 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고통을 참아내려는 아내 얼굴.
움직이지 않으려 애쓰는 손끝.
조용히 떨리는 눈꺼풀.

삶이 무너지는 듯했다.
너무 참담했고,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모든 것이 무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아내에게 나는 하루하루가 마치 죄인 같았다.

좋은 음식만 먹이고 싶었고,
무조건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아내의 표정을 한 번이라도 더 웃게 만들고 싶었다.

잠깐이라도 생각을 전환시키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생각해야 했고, 무슨 일이든 만들어야 했다.

예쁜 디저트를 고르고,
조명이 따뜻한 레스토랑을 찾고,
창가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고..


아내는 늘 미소를 지었다.
애써 태연한 척, 괜찮은 척,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말없이 음식을 먹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너는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야..’

그리고…

늘 미안했다.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매 순간 죄인이 된 기분으로 살았다.


그렇게 또 2주가 지났고,

우리는 그 2주가 또 너무 힘든 시간이었고,

우리는 양수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교수님 앞에 앉아,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다.
익숙한 표정, 익숙한 말투,
하지만 그 침묵은 너무 길었다.

아마 3분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3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교수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48번, 4번.. 염색체 유전자에서 변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성장 쪽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확인됐고…
정상적인 성장이 어려울 것 같아요..”


교수님의 말이 끝나지 전에

아내는 고개를 떨구고 울음과 통곡이 시작되었고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어떡해요…
우리 아이 어떡하면 좋아요…”


아내는 무너졌다.

그 순간,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소리가 정말로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눈앞이 정말 깜깜했었고.
그저 떨리는 손으로 아내의 손을 붙잡았다.
그마저도 제대로 붙잡지 못할 만큼,
온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교수님은 우리를 병원 큰 회의실로 안내했다.
산부인과, 정형외과, 소아과, 재활의학과, 신경외과..
각과의 전문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진지한 분위기.
그러나 그 공간엔 어떤 위로도 없었다.

우리는 긴 테이블 끝자락에 앉아,
의사들의 설명을 들었다.

모두가 현실적이고, 차갑고, 냉정하게

세밀하고 매우 구체적인 말들만 쏟아냈다.

하지만, 그 어떤 말에도
우리에겐 공포였고 또 희망은 없었다.


“성장이 제한될 것입니다.”
“비정상적으로 클 수 있습니다.”
“걷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정형외과적 수술이 평생 필요할 수 있습니다.”
“성인 키는 100cm 정도 예상됩니다.”
“합병증은…”

그리고

다른 의료진이 얘기했다.

“한두 번 수술하면 나아지지 않을까요?

몇 년 후 한 번, 청소년기에 한 번…

그 정도면 그나마 괜찮은 거죠.”


그 말이 어쩐지 너무 가벼워 보였고

우리는 울고 있지만

조금씩 분노가 올라왔다.

그들은
우리의 슬픔을 고려하지 않은 듯
극단적인 최악의 상황만을 나열했다.

나는 참으려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선생님. 우리를 왜 여기 불러요?
그냥… 그래서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건가요?
이런 얘기 말고… 인간적으로,
한 번이라도
‘잘될 수도 있다’는 말,
‘기적 같은 일도 있다’는 말,
그게 거짓말이라도…
빈말이라도,

그냥 희망적인 한 단어만 주시면 안 됐었나요?
우리 마음을 위해 해주시면 안 됐었나요?”

나는 그냥 자리에 일어서 아내를 데리고 회의실을 나왔다.


집에 돌아와 그때부터 밤까지..

계속 울기만 했다.


한참이 지난 뒤,

나는 조심스레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미안해.
너 참 잘 살고 있었는데,
왜 너 인생에 끼어들어서…
왜 결혼하자고 해서…
왜 낳자고 해서…
너의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려서…

미안하다 정말..”


“내가 그동안 못된 짓만 하고 살아서
그래 벌을 이렇게 받나 봐.
그런데… 나만 받으면 되는데
왜 너와 아이까지 이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태어나서 그렇게 처음으로 오열을 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오열한 것처럼..

참 많이 울었다.


며칠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아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녀는 강했다.
아니, 강해졌다.

그녀 안에서
‘엄마’라는 이름이
그날,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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