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부탁

100일의 기도와 위로

by 제이

누구나 사람들은 나에게 없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찾게 되고 비교하게 된다.

누구나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특히 나는 그랬었다.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어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판단하기 전에 세상이, 하늘이 나를 먼저 판단했고,

내가 내 길을 정하기 전에 세상이, 하늘이 먼저 내 길을 정해 두었을 거라고.

그래서 지금 내가 그 어떤 후회나 절망이

지금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다.


아이의 진단명을 받고 아마 한 달쯤은...

집 밖을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던 것 같다.
택배가 오거나, 전화가 오거나,
바깥세상이 그냥 두렵웠다.

세상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너무 무너져 있었기에..


우연히 TV에서 들은 말이 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가 받는 스트레스는
말기 암 선고를 받았을 때와 비슷하다는 이야기..

그런 소리만 귀에 잘 들리는 건 우연일까?

상상에 상상을 더하며

늘 그 결과는 우울하게 정리되는 감정들..


우리가 가진 현실.

또래랑 비교하고 걱정하고 재촉하는 현실들..

우리 아이는 평생 어른이 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밤, 낮으로 나를 괴롭혔고,

혹여나 다르다고 해서 사람들이 미워하고 싫어하고 손가락질하면 어떡하지?

아이가 상처가 받으면 어떡해 말해주지?

아빠가 뭘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평범하게 웃고 뛰는 아이들을 보면

그 애가 받을 상처를 먼저 걱정하게 되고,

아무 이유 없이도 눈물이 솟구쳤다.

하루 종일 이런 생각들만 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 죽지 않기 위해 살아야 했고,
살아 있기 위해 숨을 참고 있었다.

그토록 안쓰럽고 안 됐다고 생각하던 이야기,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힘들겠다'던 이야기,
‘그래도 안 낳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모든 말들이

그런 속 마음들이
이제는 내 이야기가 되었다.

길을 걷다가 장애아이나 불편한 아이들을 보면

"아휴.."

라고 했던 측인지심과 미안한 동정심이 생겼고,

그런 한숨이 결국 나에게 돌아왔다.


출산 3개월을 앞둔 나는,
계속적으로 너무나 쉽게 무너져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무기력했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매일 되짚었고,
지금을 바꿀 수 있다면

모든지 하겠다는 무모한 생각들과,

허락이 된다면
대신 아프고 싶었다.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하지만 시간은 가고 있었다.



처음 아이가 우리에게 오던 날

멀리 있는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렸고

“엄마, 여자아이래요.”

그러자 엄마는 환하게 웃으시면서

“세상에!
우리 집에 여자아이는 처음이잖아.
웬일이니, 정말 축하한다,
우리 이제 뭘 하면 되니?”


엄마는 그야말로 기뻐하셨다.

하지만

받아야 할 축복을 받는 와중에
도무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런데 엄마, 우리 아이가

장애가 있대요..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데..

어떡하면 좋나요...’


그 순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숨죽여 울고 있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그냥 마음속으로 외쳤다.

감기에도 일주일 내내 전화를 해 걱정하는 사람이 엄마였고,
일찍이 아버지 없이 혼자 살아가며 늘 나에게만 의지하는 그녀에게
이 소식을 전하면 그 순간부터 함께 무너질 것 같았다.

더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내가 조용히 물었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나는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내가 내려가서 잘 말할게”

"거짓말이라도 하게?"

"..."

축복도, 슬픔도
세상 밖에 꺼낼 수 없는 날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장모님께는 솔직하게 말할까?”

아내도 동의했다.

사실 어른이 필요했다.

누구에게 기대고 싶었고, 의지하고 싶었다.

나는 아빠였지만 부족했고

두려웠고 무서웠다.


장모님은 강한 분이다.
아내가 말하길
가족 중 누구보다도 단단한 사람이라고 했다.


모든 걸 알게 된 장모님은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아내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고,
나는 손끝이 저려오는 걸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고


그리고 장모님은 한참을 우셨다.
아마 아이가 아파서가 아니라

이 세상 살날도 많은 자식들이 안타깝고 불쌍해서

또 본인 인생까지도

그렇게 서러워하셨던 것 같다.


한참을 우시고선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말없이, 하지만 단단하게,
흔들림 없는 손으로.


나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무릎을 꿇었고

“어머니...
귀한 딸 데리고 잘 산다고 약속했는데...
이런 모습 보여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제가 정말 죄송해요.”

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귀한 딸 인생 제가 결국엔 망쳐놨어요.”

“정말...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장모님은
말없이 내 손을 잡았고

그리고 말씀하셨다.

“박서방...
괜찮아.
일단 태어나서 보자.
아직 뱃속에 있잖아.
어떤 기적이 있을지
아무도 몰라.”


그로부터 장모님은 100일 동안

성당에 새벽기도를 시작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기도하면 바뀌수 있을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

“지금 모든 걸 바꿀 수 없다면
그 아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게만 해달라”며
매일 아침 조용히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셨다고 했다.


출산을 몇 주 앞두고

장모님은 우리를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이 아이가 찾아온 거라고

이 아이가 다른 집 가서 살면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아서

불행할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이 부모가 되면 아이가 고생하니깐

이 아이는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고.

저 위에서 성모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너네 부부에게 주신 거라고

너네 들은 잘 키울 수 있으니깐

정말 귀하고 귀한 아이가 오니까 준비 잘하라고

너네가 아니면 키울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말이

희망을 가장한 위로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말보다
내 심장을 지켜주는 담요 같았다.


세상에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있을 때,
그걸 함께 이해하고 껴안아주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만든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지금 인생이

조금 더 따듯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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