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어주세요.
아내와 나는 10년 전 처음 만났다.
연애는 반복된 만남과 이별 속에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깊어지며 흘러갔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
우리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늦은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 후의 시간은 참 따뜻했다.
나의 부족함을 조용히 채워주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매일이 설렘이었다.
아내는 1남 2녀 중 장녀였다.
스무 살, 아직 세상 구경도 다 못 했을 나이에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강했고,
누구보다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쉽게 기대지 않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늘 스스로를 다잡으며,
조금이라도 부족해 보이지 않으려
완벽함을 향해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살아온 여자였다.
반면 나는,
어릴 적부터 늘 혼자였다.
아버지는 작은 지방에서 고위 공무원의 운전기사를 하셨고
어머니는 작은 매점, 카페, 보험 등 여러 세일즈까지
가정생활을 위해 항상 밖에 계셨다.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다.
그래서 나는 늘 불안했다.
언제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나버릴까,
그 생각에 밤마다 숨죽이며,
지금도
방문을 조금 열어둬야만 잠이 든다.
어둠이 완전히 닫힌 공간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때 나는,
언제든 엄마가 집을 나설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늘 방문을 10Cm 열어둔 채 잠이 들었으며,
밖에서의 인기척이 들리면
나도 엄마를 따라가야 한다며 다짐 속에
늘 마음의 신발끈을 묶고 잠에 들었었다.
우리 집 형편은 빠듯했다.
그냥 가난했다는 말이 더 솔직할 것 같다.
창고방, 달방, 샛방을 전전하며
이사 다니는 게 익숙했고,
짐을 싸고 푸는 일은 늘 반복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평일엔 운전일을,
주말엔 막노동을 하셨다.
하루라도 쉬는 날 없이,
매일 밤 온몸에 파스가 도배되도록 일하셨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고,
아버지는 마침내
작은 23평 아파트 하나를 마련하셨다.
그 집은 우리 가족에게 처음으로
따뜻하고 벅찬 기쁨이었을까.
그땐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도
우리는 온전히 함께 머물지 못했다.
가족은 늘 밖에 있었고,
일터에, 학교에, 각자의 생존 속에 흩어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아파트는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라기보다
‘가족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공간’ 같았다.
하루를 견디고 지친 몸을 누이러 들르는,
잠깐 머물다 다시 떠나는,
그런 쉼터 같기도 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예 관심도 없었다.
고등학교, 대학.
그건 내 삶과는 먼 얘기였다.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공부 자체가 너무 두려웠다.
애초에 기대도, 희망도 품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누구도 데려다주지 않았고,
누구도 마중 오지 않았다.
등굣길은 늘 혼자였고,
돌아오는 길도 혼자였다.
방과 후 학원은커녕,
수학문제보다 더 어려운 건
빈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원 대신 친구들과 놀았고,
놀이터, 골목길, 문방구 앞이 내 놀이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문방구에서 BB탄 권총 장난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갖고 싶었지만
당연히 살 돈이 없었다.
망설이다가 나는 결국, 훔쳤다.
작은 장난감 하나.
주머니에 넣고 나오는 그 순간,
내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그 짜릿함이, 그 두근거림이,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았다.
어딘가에 닿고 싶었던 마음,
소속되고 싶었던 욕구,
갈 곳 없던 내 마음의 표류였다.
그 이후로
나는 문방구에서 계속 장난감들을 훔치기 시작했고,
반 친구들에게 되팔기도 했다.
또 그 돈으로는 오락실에 갔다.
잠깐이라도 누군가가 나를 주목해 주는 공간.
동전 하나로 다른 세상에 갈 수 있는 곳.
그렇게
학교보다 뒷골목이 더 편해졌고,
선생님보다 오락기 앞 사장님이 더 익숙해졌다.
밖이 더 따뜻했다.
아무도 나를 통제하지 않았고,
아무도 내 성적을 묻지 않았으며,
내가 잘못된 길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세상이었다.
나는,
그렇게 점점 바깥의 아이가 되어갔다.
고등학생이 되어
새벽이면 신문을 돌려 돈을 벌기 시작했다.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차가운 골목을 자전거로 달리는 그 시간은
이상하게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좋았다.
모은 돈으로는
친구가 다니던 체육관에 등록했다.
운동을 하고 싶었던 건지,
그저 무언가에 소속되고 싶었던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몰래 숨어서 피우던 담배 한 모금이
내겐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 같기도 했고,
그냥..
마음속의 허기를 채우는 무언가였던 것 같기도 하다.
술도 마셨다.
몰래 쪽방에 숨어 마시는 소주.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위로를 받았다.
학교 점심시간이면 학교를 나와
당구장으로 향했다.
늘 도시락을 싸갈 수 없었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엔
교실이 아니라 친구 집을 전전했다.
그 집에서
따뜻한 밥 냄새가 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고,
TV 소리가 배경처럼 흘렀다.
나는,
그런 곳이 늘 부러웠다.
그래서 집보다 친구 집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그냥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군대를 제대한 후
나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정해진 계획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그저 도망하고 싶고,
다른 세상에서는 더 잘될 것 같은 생각, 그리고 절박함 하나로 짐을 꾸렸다.
작은 손재주 하나 믿고
디자인 사무실에 취직했다.
경력도 실력도 없는 스물셋의 청춘에게
그곳은 전부였다.
하지만
급여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주머니 속 돈은 늘 비어 있었다.
밤이 되면
술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말엔 하루 종일 서빙 아르바이트.
그렇게 한 달에 40만 원을 벌어서
반을 엄마에게 생활비로 드렸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며 살아온 날들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결핍’이었다.
경제적인 결핍은 물론이고,
정서, 관계, 돌봄, 사랑 등등의 모든 결핍 들이 나에게 오고 있었다.
무엇 하나 풍족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자꾸만
사람에게 집착하게 됐다.
누가 조금만 내게 잘해주면
온 마음을 줘버렸고,
조금만 거리를 두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 마음은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늘 불안하게 흔들렸다.
술만 마시만 하는 말
'제발 내 옆에 있어줘.'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장난으로 넘겼지만
나는 그게,
내 마음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제,
내 아이가 생겼다.
그 사실 앞에서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그 어느 하나 ‘정상’이라 말할 수 없는 내가
과연,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바보처럼 작아졌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없이 작고, 한없이 부족한 내가
이 세상에 한 생명을 맞이할 준비가 된 걸까.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부모 역시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를 키우며,
날 지켜보며,
얼마나 많은 순간을 두려움 속에 살아냈을지를.
지금은 비판만 했던 그들의 말들이
하나둘 마음에 스며들었다.
결혼 후의 삶도
사실 결핍의 연속이었다.
아이에게 부모 노릇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처럼,
아내에게도
제대로 된 남편이 되어준 적이 있었을까.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나버릴까 두려워
문을 열어둔 채 잠들던 밤처럼,
결혼 후에도
나는 늘 불안했다.
아내가 혹시,
언제 나를 떠날까 봐.
어느 날 등을 돌릴까 봐.
나는 늘
누군가를 잃을까 봐
애써 잘해보려 했고,
그만큼
스스로를 옥죄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
아빠가 된다.
나는 이 일이
단순히 '아이를 갖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빠가 된다는 건,
내가 누구였는지를 마주 보는 일이고,
내 안의 상처들을 다시 꺼내는 일이며,
이제는 그것을 ‘누군가의 울타리’로 바꿔내는 일이었다.
이 아이 덕분에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진심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비로소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는
내가 외면하고 살던 ‘나’라는 사람을
가장 정직하게 마주하게 만든 존재였다.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이 아이에게 선물을 받았다.
심리 상담과 정신과 상담을 받고,
육아 책을 읽고,
TV 속 육아 프로그램을 보며
나는 조금씩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그 안에,
아무도 어루만져주지 않은 상처가 있었고
오랫동안 말도 꺼내지 못한 외로움이
고요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내 안의 상처와 마주했다.
피하고만 싶었던 나의 과거,
감춰두었던 기억들,
그리고 외면했던 내 모습까지.
후회는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했다.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아쉬움이
가슴 한편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하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은
그 모든 아쉬움을 되새김질할 시간도,
스스로를 탓할 여유도 아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올
작고 여린 생명과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그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야 한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가르치고
무엇을 해주고,
무엇이 되어주겠다는 그 모든 다짐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바뀌는 것.
내가 변해야
이 아이에게
진짜 어른이 되어줄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모자라고,
이렇게 바보 같고,
배운 것 하나 없는 내가
과연, 정말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앞날이 두려웠다.
무서웠다.
후회도 많이 했다.
그 후회조차 다시 후회하며
‘왜 더 일찍 철들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지금이라도 괜찮을까.’
수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이 삶은 누가 대신 만든 길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삶이다.
부족하더라도,
더디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아이에게
기꺼이 아빠가 되기로 한,
내 인생의 첫 번째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