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기적이었고, 가장 큰 사랑이었다.
아기가 처음 집에 온 날이다.
알려나? 자기 집인걸?
아기는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었다.
낯선 공기, 낯선 온도, 낯선 세상.
너무 작고, 가볍고, 조심스러운 그 생명은
한참을 품에 안겨 있다가
조용히,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감았다 반복했다.
우리는 다시 정식으로 인사를 했고
서로 소개를 하였다.
"안녕, 나는 아빠야.
목소리 기억나? 앞으로 잘해보자?"
아내도
작은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작은 손을 꼭 쥐었다.
"나는 엄마야,
엄마 배속에서 많이 답답했지?
이제부터는 엄마가 매일매일 안아줄게"
우리를 보았는지,
집을 보는 건지,
그저 주변만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우리는 아기를 처음 안아보는
너무나 서툰 부모였다.
어떻게 안아야 할지,
어디를 만져야 할지,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그저, 작은 아기 하나 앞에서
모든 것이 두려웠다.
머리는 조금 커 보였고,
손과 발은 유난히 앙상하고 작았다.
하지만 그런 건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온기가 그대로 가슴속으로 전해졌고,
멈춰 있던 것 같은 심장이
다시 천천히, 따뜻하게 뛰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나 예쁜 아이를 두고
우리는 왜 그토록 두려워했을까.
왜 그렇게 많이 울고, 많이 무너졌을까.
그동안 수없이 했던 후회와 걱정,
기도로 지새운 밤들과
울다 잠든 새벽들이
모두가 부끄러워졌다.
아기는 배속에 진단과 동일한 병명으로
바깥세상으로 나왔고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야 했다.
정형외과, 소아과, 재활의학과..
이 작은 몸이 거쳐야 할 진료실이 너무 많았다.
하얀 복도의 끝에서,
처음이 아닌 약간의 친근함이 있는 의료진들 이였다.
하지만, 이제 진짜 현실이라는 걸 알기에,
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낯설고, 가슴이 아팠다.
한 번은 교수님이
아기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 애들은 우리나라에서 키 작으면 왕따 당합니다.
나중에 수술해야 하고요.
수술하면 좀 크려나?”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숨이 목에 걸렸고 가슴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화가 많이 났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감정을 내보이는 순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닿을까 봐. 두려웠다.
진료실을 나와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웃어 보였다.
어떻게든 괜찮은 척,
아무 일 아닌 듯..
병원에는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아픈 줄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 상황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다르게 다가왔다.
산소 호스를 찬 아이,
휠체어에 앉아 힘겹게 숨을 쉬는 아이,
털모자를 꾹 눌러쓴 아이..
그 작은 존재들을 볼 때마다
그냥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안녕?" 하고 인사가 나왔다.
내 아이가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힘겨운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세상에 어떤 절망이 와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수도 없이 다짐했다.
모든 부모가 품는 당연한 다짐일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부족하고 흔들리는 나에게는
그 결심이
가장 큰 약속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잘못인지
몇 번을 탓하고, 몇 번을 무너졌지만
지금,
이 아이는 내 품 안에 있고
나는 이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만으로
다시 일어설 이유가 되었다.
태어난 지 50일이 지났다.
아기의 얼굴은 날마다 달라졌다.
볼이 살짝 오르고, 눈빛이 또렷해졌다.
조금씩 몸이 자라나는 게 느껴졌지만,
팔과 다리는 여전히 너무 작았다.
"난 아직 잘 모르겠어"
처음 아빠이고 처음 엄마여서
또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외형이 다른다는 것을 잘 판단하지 못했다.
기쁘고 행복했지만 약간의 불안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질 것 같았다.
아내는
더 열심히 모유를 먹였다.
아침, 밤에도 모유를 만들었고,
시간마다 알람을 맞춰
잠결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40ml를 먹인 날엔
"와, 오늘은 좀 먹었다"며 미소 지었고
70ml를 먹은 날엔
"잘 먹어 잘 크겠지?" 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모유 수유는 거의 1년 가까이 이어졌다.
아내는 원래도 말랐지만 점점 말라간 것 같았다.
어느새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었다.
그저 우리끼리,
건강하고 아프지 않게 기념하는 작은 상을 차렸고
소박한 떡과 음식을 준비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앞으로 잘 살아가야 한다
마음가짐이 겹쳐졌다.
아이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몸은 그래도 커진 것 같은데,
팔과 다리는 여전히 작았다.
보는 내내
걱정과 사랑이 교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예뻤다.
작고 가는 손가락,
갸우뚱 기울어진 고개,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투명한 눈동자.
유난히 아기가 옹알이를 계속했다.
분명히,
우리를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아기는 하루 종일 옹알이를 했다.
표정도 밝고, 웃음도 많아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웃음을 지어 보였고,
우리를 쳐다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애썼다.
나는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일 것 같았다.
“아가야,
지금 이 순간이 계속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밖으로 나가게 되면 늘 겁이 났다.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보고 다르다고 하면 어쩌지?’
'우리 아기가 이상하다고 보진 않겠지?'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아서
아기를 가릴 듯
유모차 덮개를 조금씩 더 내렸다.
부모답지 못한 행동들에
후회하고 창피했다.
그날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지나가는 아주머니,
강아지를 산책하던 사람들은 아기를 보며
밝게 웃어주었고
길가에 할머니들은
요즘은 아기들이 귀하니 잘 키우라는 말을 하시면서
아기 발을 만지셨다.
"아이고, 세상에..
금보다 더 귀한 아기발이네.."
세상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무섭지 않았다.
내가 너무 겁을 먹고 있었을 뿐.
내가 먼저 움츠리고 있었을 뿐.
그날
어느 TV 속에서 이런 메시지가 나왔다.
“괜찮아.
조금 천천히 가도 돼.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어느 날은
감기가 있어 집 근처 소아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병원이었고,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린 뒤,
진료실 문이 열렸다.
의자에 앉은 선생님은
아기를 보자마자 조용히 말씀하셨다.
“음.. 우리 아기 조금 다르네요?
잘 낳으셨어요.”
그 한 마디에
아내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선생님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는
“많이 힘드셨죠..? 괜찮을 거예요.”
병명도, 어려움도,
우리가 지나온 시간도, 다 알고 계신 듯했다.
선생님은 마지막에,
“지금 아이 너무 예뻐요.
그리고 정말 잘 크고 있어요.”
라고 하셨고
우리는 그 말이 위로인 줄 알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졌다.
병원을 나오면서,
아내가 말했다.
"이제 다르게 보이는 걸까?"
그러자 나는 아내 손을 잡으며,
"좀 다르면 어때.."
라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과거의 마음을 완전히 고쳐 먹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이 아기 중심으로 흘러갔다.
기뻐할 틈도,
슬퍼할 여유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달려왔다.
밤낮없이 계속된 재활 치료,
매일의 운동, 매일의 마사지..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던 그 루틴 속에서
아내는 육아에 지쳐갔고
나 또한 무기력해졌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변명하지도 않았다.
이 아이가 우리에게 온 이유를
그저 받아들이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다.
재활의학과에서는
3개월마다 교수님의 평가가 있었다.
그 검사를 통과해야만
재활의학과 졸업을 했었다.
더 이상 재활의학과는 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재검사였다.
언제나 다시 한 번 더..
우리는 익숙해져 있었다.
실망도, 눈물도, 한숨도
이미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날도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었다.
보통은 1시간 이내 연락이 왔었다.
그런데 이번엔
2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왠지 불안했고, 문득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무슨 얘길 들은 걸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집으로 향했고,
아내가 집에 오자마자
주저 않아 통곡을 시작했다.
한 20분을 그 자리에서 울기만 했었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냐며
말 걸기가 두려워 가만히 있었다.
‘아.. 올게 왔구나,
이번엔 무엇일까..’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각오는 되어있지만, 최대한 심각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본인이 10년 이상 일 해오면서 이병을 가진 아이들 중에서
이렇게 좋아지는 아이는
아마도 이 아이가 처음이래..
이 병을 가진 아이들 중에 키도 가장 크고,
서있는 것, 앉아있는 것,
걷는 것까지
이 아이가 혼자서 스스로 노력하는 것 같다고
대단한 아이래.”
그 순간,
나도 믿을 수 없었고 말을 잃었다.
서로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빠르데..
심지어,
아이가 스스로 하려고 해.
그게 너무 대단하대."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내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이 미어지듯
벅차고,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에 눈물이 나왔다.
“아가야.. 정말 고마워.
정말.. 너무 고마워.”
6월 30일 이 날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지금의 이 작은 기적이
가장 큰 사랑을 주었고 믿음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다시는 희망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