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견디는 나만의 방식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자라났다.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단어가 늘었고,
문장이 만들어지고,
눈빛은 깊어졌고,
감정은 더 풍성해졌으며,
그 작은 얼굴엔 하루가 다르게 표정이 자라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외형적인 ‘차이’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또래 아이들과는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
처음엔 이마의 높이,
그다음엔 머리끝에서 코, 그리고 이젠 머리에서 어깨까지의 차이...
누구보다 먼저
부모가 그 차이를 느꼈고,
조금씩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람들의 시선들에서도 다르다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는
말없이 한참을 아이를 바라보다
입을 다물었고,
누군가는
그저 웃고는
슬며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소곤소곤하는 것들이
그렇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 짧은 ‘정적’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말을 들려주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외모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스스로를 설득하고, 다독이고, 애써 위로했다.
아내에게 마저 말하고 싶지 않았고,
정말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불안 속에서 흔들렸다.
언젠가 아이가 내게 물을까 봐
나는 매일 두려웠다.
“아빠, 나는 왜 다른 친구들과 달라?”
혹시라도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까..
오늘도 여전히
그 대답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TV에서 우연히
다운증후군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 엄마는 담담하게, 그러나 울먹이며 말했다.
“처음엔 아이를 감추고 싶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고,
누군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죠.”
하지만 어느 날,
그는 결심했다고 했다.
세상은 바꿀 수 없고,
아이도 바꿀 수 없다면,
엄마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바깥세상으로 나갔다.
이런 다른 아이들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그 아이는 훗날
자존감이 자라났고,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여 결혼도 하였다.
너무 공감이 되고 따라 하고 싶었기에
마음속 어딘가가
뜨거워졌다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래, 그것이면 됐다.
우리 아이도,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그걸 향해
하루하루 나아가면 된다.
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도 그녀의 공감을 배우기로 결심했고
세상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우리 아이를 누가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눈치 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면 어떡하지.
불안 속에서,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하니까.
숨지 않고, 외면하지 않기로 크게 마음을 먹었다.
처음 버스를 탔고,
처음 자전거를 태웠고,
처음 산에도 올랐으며,
워터파크, 동물원, 뮤지컬등 사람이 많은
이곳저곳을 다녀왔다.
한강 자전거길에서
아기띠로 아이를 품고 따릉이를 탔던 그날,
그 순간은 아이에게도 처음이지만,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처음느기는 행복이었다.
주말이면 성당에도 데리고 나갔고
기적을 바라며, 믿음을 붙잡고.
하지만 그보다 더 따뜻했던 건,
그냥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보고 웃었다.
말없이 손을 흔들기도 하고,
할머니들은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떤 날은
지나가던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왜지? 정말 예뻐서인가?'
'작아서 귀여워서인가?'
'아니면.. 정말 이상해 보여서 그런 걸까'
이 아이의 ‘다름’을 단번에 알아챈 건 아닐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표정도 말투도 모두 따뜻했지만,
그 이면의 진심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특별한 아이로 보인 걸까?
불쌍한 아이로 보인 걸까?
그도 아니면 그냥,
그 순간 그들이 가진 온기로 반응한 것일까.
나는 늘 사람들의 반응을 읽으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그 따뜻함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 아이가 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아이를 통해
세상을 새로 알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애가 있어도,
몸이 조금 불편해도,
사람들의 마음이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몰랐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씩은...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밖을 걷다 보면,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멀쩡하고 건강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이 시큰해진다.
‘우리 아이도 괜찮은 걸까?’
‘나중에 수술하면 저런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사춘기.. 혹여나 상처받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런 생각만 한다.
일도, 대화도, 모든 것이 배경이 되어버리고
그 걱정만이 내 앞에 선명하게 남는다.
그런데 또,
내 아이를 바라보게 되면
그 모든 생각이 쉽게 잊힌다.
자라나는 모습,
변해가는 표정과 말투,
조금씩 뚜렷해지는 이목구비,
어느새 대화가 통하는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나는 매일매일 오히려 더 겁이 난 것 같다.
그 소중함을 지켜주지 못할까 봐.
언젠가 이 아이가 상처받고
나를 원망하게 될까 봐.
그런 생각, 하면 안 되는 걸 아는데..
그럼에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수많은 편견들이
매일 아침을 흔들고,
하루의 끝마저 조용히 무너뜨린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어려움이라지만,
특히나 우리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그 아픔은 늘 더 크게, 더 깊게 확대되어 온다.
조금만 열이 나도,
조금만 아파해도,
나는 먼저 묻는다.
“선생님, 아이가 이런 질병이 있어요. 혹시, 그것 때문인가요?
그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의 잘못을 떠올린다.
내가 뭔가 놓친 건 아닐까.
아빠로서 부족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 아이가 더 힘든 건 아닐까.
아이의 작은 신음에도
가슴이 쪼그라들고,
죄책감에 눈물이 고인다.
그리고 그 눈물은,
예전처럼...
소리 없이 후회로 바뀐다.
어느 날이었다.
어린이집 하원 후,
같은 반 여러 명의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뛰놀던 날.
정글짐 위에서 아이들이 얽히고 부딪히며 노는 사이,
동급 아이들 사이에서 쉽게 휩쓸려 넘어졌고,
눈 한쪽이 심하게 부었다.
체격이 작다 보니
조금만 부딪혀도
더 쉽게 밀리고, 더 크게 다친다.
놀이터 기구에 찧은 눈은
그날 저녁,
서러움과 아픔이 뒤섞인 울음.
나는 그저 옆에서 가슴만 쥐어뜯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은
늘 이렇게 뒤늦게 찾아왔다.
시간이 흐르며
아이도 조금씩 컸다.
그리고 우리도,
부모로서 아주 천천히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진짜 육아가 시작이네. 미운 네 살이지?"
특별한 아이에게
그 시기가 없을 리 없었다.
역시나 밤에는 잠을 자지 않았고,
낮에는 밥을 거부했다.
어떻게든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는
우리의 간절함은
아이가 손사래 치는 순간,
속절없이 무너졌다.
건강하게, 잘 자라기만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과
세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아이의 마음은
그렇게 자주 엇갈렸다.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짜증이 일상이 되었고,
소통이 되지 않는 순간마다
부모도, 아이도
감정의 벽 앞에서 무너졌다.
과거 나는 누구보다
우리 아이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고 믿었다.
“육아쯤이야.”
다짐하고 덤벼들었지만,
현실은 그저 참아내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정성껏 저녁상을 차린날도,
좋아하는 반찬, 따뜻한 밥.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아이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고,
입에 넣은 음식을 뱉었고,
급기야 그릇을 던졌다.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너, 먹지 마! 다신 안 줘! 저리 가!”
입에서 나온 말들이
돌이킬 수 없이 흉터처럼 남았다.
가슴은 이미 후회로 가득했지만,
머리는 감정을 멈출 수 없었다.
그날 밤,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아빠.. 이제 싫어.. 이제 사랑 안 해...”
이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짜증이 나는 날과 나지 않는 날의 차이는
사실 없었것 같다.
그냥 ‘참았느냐, 터졌느냐’의 차이뿐이었다.
그래서 더 아프다.
난 왜 그때 그렇게 화를 냈을까.
그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무엇을 지키려고 그리 날을 세웠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
'그저 이 아이만을 미래를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자.'
'이 아이의 감정이 먼저다.'
그 다짐을
오늘도,
그리고 매일밤 잠들기 전에 주문처럼 외우고 잠이 든다.
아내는 원래부터 몸이 약했다.
그런데 출산 후 폐경도 이르게 찾아왔다.
그만큼 육아는 아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기 점점 더 어려워졌다.
어느 날,
입술은 보기 흉할 만큼 터지고,
상처가 깊어지면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그 상태로 아이를 돌보다가
결국 몸살이 오면
2~3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게
도저히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래서 나는 유연근무제를 써서 매일 퇴근 시간을 앞당겼다.
누구보다 빨리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도착할 때마다
아내는 지쳐 있었고,
아이는 울고 있었다.
지쳐 있는 사람과 우는 사람.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
매일이 그랬다.
그게 일상이 되자,
결국 부부싸움으로 번졌고,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아이 앞에서 해버리고 말았다.
소리치고, 피하고, 상처 주고..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을까
혼자 술을 마시면서 또 울게 되었고,
생각을 했다.
'과연 이런 게 정말 행복일까?'
이렇게 매일 후회하고
무너지는 삶을 살아가는 게
내가 꿈꾸던 가정일까?
나는 그렇게
삶에 대한 의심과
아빠라는 역할에 대한 좌절감 속에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바깥세상은 불편했고,
사람들의 시선은 따갑고,
그 시선을 마주하는 나는 늘 회피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동시에 집 안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아내와의 갈등은 계속되고,
아이의 끝없는 울음,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는 상황들에,
나는 점점, 위험해지고 있었다.
모든 게 똑같은 하루였다.
잠에서 깨면 불안했고,
눈을 감아도 두려웠다.
아이가 말했다.
“아빠.. 이제 싫어.”
순간, 나는 그 말을 진심처럼 받아들였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더 아팠다.
그 말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이 두려워졌다.
내일 또 같은 말을 들을까 봐,
또다시 아이에게서도 버림받을까 봐.
과거의 상처들이 밀려왔다.
어릴 적,
문이 살짝 열려 있을 때마다
엄마가 날 버리고 떠날까 봐
밤마다 잠들지 못하던 그 감정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이제
아빠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두려움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고,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견딜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무너졌다.
한없이 초라했고,
한없이 미안했다.
소심하게도,
아이에게까지 외면당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깊게, 심각하게 나를 흔들었다.
너무 위험했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시간.'
'내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
이대로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육아 공부 한번 해보기로..
육아에 대한 책을 읽고,
애착 이론을 공부하고,
부모 교육 방송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는 부모들의 이야기도 읽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무너진 애착을,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조금씩이라도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인정받고 싶었다.
가정을 지키고 싶었고,
단 한 번의 시간뿐이라 생각했었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그렇게 알게 된 건,
내가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감성적인,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작은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지인들은 말한다.
“아이들은 다 그런 말을 해. 성장 과정이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 넘길 수 없었다.
너무 아팠다.
내일 또 어떤 말을 들을지 두려웠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걸까.
정말로 나는,
아빠로서 자격이 없는 걸까.
아무도 그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