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지키는 일, 나를 지키는 일

다르다는 이유로 상처받지 않기를

by 제이

육아라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다시 키우는 일 같기도 하다.

요즘 들어,

이 말을 자주 곱씹는다.

매번 돌아오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나는 아빠로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내가 가지지 못한 시간을 만들어 가면서

찬란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할 때 아이의 표정을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막상 그 시간이 다가오면

언제나 무기력해지고,

지쳐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 참.. 마음처럼 되지 않는구나.”


아이는 잠을 자지 않거나,

이유 없이 울어버리는 순간들,

그러다 조금이라도 아프기라도 하면

그저 힘들다는 생각과 알 수 없는 화들이 밀려왔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나는 또 생각했다.

‘이게 정말 화낼 일이 맞을까?’

‘아이가 지금 바라는 게 무엇일까?’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내 안의 감정들이 먼저 튀어나온다.

“너, 왜 자꾸 말을 안 들어?”

“아빠 나갈 거야! 혼자 있어!”

그리고 깨닫는다.

‘헉,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그 말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알고 있었다.

뒤늦게 후회하며 생각한다.

아이의 마음에 남은 작은 상처 하나를

완전히 아물게 하려면

일주일 이상,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사랑과 이해를 쏟아야 하는 것 같다.

그게 아이의 마음인 것 같다.


나는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는

오래된 방식들과 싸우고 있다.

지시하고, 다그치고, 단정 짓는 나.

그런 나를 버리고 싶었다.

권유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아빠로..

또 이런 아빠가 되고 싶었다.

한평생 그렇게 살지 못해

이미 몸과 마음이 권위적인 사람으로 길들여져 있는데,

과연 바뀔 수 있을까?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방 안에서 혼자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속삭인다.

“아빠가 오늘도 많이 부족했지?

많이 서운해?

내일은 더 잘해볼게.”

나는 매일 조금씩,

아이를 키우며

나 자신을 다시 키워가고 있다.


아이와 함께 읽는 동화책,

역할놀이로 웃음을 나누는 시간,

밥숟가락을 들고 마주 앉는 몇 분의 식사,

잠자리에서 힘껏 안아주는 포옹,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린 뒤 건네는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라는 말 한마디.

그 모든 순간들이

우리 둘 사이에 애착이라는 이름으로

천천히, 그렇게 단단하게 쌓여가고 있다.

아직은 내가 그 애착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체감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아이가 그것을 사랑이라 기억하길

나는 믿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또 나와 다를게 자라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며

세상에 나갔을 때 강한 아이가 되길 바라며,

처음엔 단순했다.

‘내가 받지 못한 걸 너에게는 주고 싶다.’

그런 마음을 아이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부러울 정도로

오색 김밥 도시락을 싸주었고,

키즈카페에 가서 악당이 되어 아이와 하루 종일 몸으로 놀아주고,

동물원에 가서 직접 먹이도 주며,

때로는 내가 동물이 되기도 하고,

남들 다 한다는 아이들 뮤지컬,

한강 공원 소풍에,

날씨 좋은 날 숲 속에

사실 이 모든 것들이

겉으론 아이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 나도 참 즐거웠다.

아이 덕분에 내가 처음 보는 세상을 만났고,

그 속에서 나도 아이처럼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사실 나도 가족이랑 소풍은 해본 적이 없었고

어릴 때 동물원은 잘 사는 아이들만 갔었던 곳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아이가

나에게 선물을 해주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갔다.

놀랍게도 아이는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분리불안은 완벽히 사라졌고,

혼자서도 잠들 수 있게 되었으며,

단어가 늘고, 생각이 자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행복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자주 중얼거렸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빠르구나..

언제 이렇게 컸니?”

그 말속엔 단순한 외모의 변화를 넘어선,

내 마음의 감탄이 담겨 있었다.

정말 힘겹게 시작한 삶이지만,

아이의 웃음과 눈빛은

아이의 삶 자체는

내가 이 세상을 버티게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때로는 이 아이가 세상에서 상처받지는 않을까,

누군가의 시선이 이 아이를 아프게 하지는 않을까.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이 들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괜찮아, 버틸 수 있고 내일은 달라질 수 있어.'

아이는 어느새 내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에게 배우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세상을 붙잡는 그 용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그 힘,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확신.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단순히 아이만 자라는 일이 아니다.

그 아이를 통해 부모인 나도 함께 자란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사람다워지는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중얼거린다.

“나에게 와줘서 고맙고,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매일같이 미안해..”


행복함이 있는 동시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감정들도 있었다.

얼마 전, 또래 아이들과 함께 키즈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입장하자마자

누가 먼저 가나 시합이라도 하듯 뛰어갔고,
우리 아이는 눈에 띄게 작은 체격으로
힘겹게 뒤따라갔지만

결국 혼자 뒤처지고 말았다.

정글짐이나 높은 곳에 오를 때마다
홀로 낙오되는 모습은 내 눈에도 선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아이의 마음에는
소외감과 자존감의 흠집이 하나씩 새겨지는 듯했다.

결국 참지 못한 아이가 서럽게 울며 내게 물었다.

“왜 난 항상 꼴찌야?”
“왜 나는 맨날 양보해야 해?”
“왜 나는 아이들처럼 1등을 못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고,
그저 아이를 꼭 끌어안고 함께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내 눈물이 흘러내리는 순간
아이가 스스로를 더 연약하게 느낄까 봐,
자존감에 더 깊은 상처가 남을까 봐,
마음속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아무렇지 않은 듯 설명해야 했다.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아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뭐가 어때서..
1등이 뭐가 중요해.. 하나도 안 중요해~
같이 어울리고 즐겁게 노는 게 훨씬 더 소중하지.”

“너는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놀면 돼.

알았지?"


이 아이가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중요하지 않아"는 이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실, 나도 아직 답을 모른다.
나조차도 세상이 가끔은 두렵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히 아는 것이 있다.

내가 이 아이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 아이의 자존감이 흔들릴 때마다,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

언젠가 아이가 또 내게 물을 것이다.

“아빠, 나는 왜 달라?”

그 순간,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달라서 더 특별한 거야.
달라서 아빠가 더 많이 사랑해.
세상에 똑같은 꽃은 없잖아?
너는 너라서, 그래서 눈부신 거야.”


시간이 흐르며 나는 알게 되었다.
아이의 ‘다름’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 다름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받을 상처가 두려운 거라고.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아직 서툰 위로일지라도
아이가 내 말을 마음속 깊이 간직해 주길.

그리고 언젠가, 스스로 이렇게 말해주길.

“나는 괜찮아.
나는 내가 좋아.
나는, 그래서 행복해.”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오늘도 아이 곁에서,
천 번이라도, 만 번이라도 같은 말을 해줄 것이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
너는 누구보다 예쁘고,
너는 언제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세상에는 이유 없이 따뜻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지하철에서 환하게 인사해 주던 낯선 사람,
운전하다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주던 누군가,
작은 선물을 건네며 미소 지어주던 할머니까지..

그 순간마다 나는 깨닫는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구나.

그리고 문득 알게 된다.
어쩌면 이 아이 덕분에
나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내가 외면하고 두려워하던 그 세상도
이 아이의 미소 앞에서는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아이가 조금 다르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침에 눈을 뜨면 불안이 앞섰고,
밤이 되면 기도와 눈물로 하루를 버텼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어느 날부터인지,
내 입술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말은
“행복하다”였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 아이와는 거의 모든 것이 통한다.
말도 참 잘한다.
때로는 말이 많아, 조금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요즘 아이들의 성장이 이렇게 빠르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말만 잘 듣는 건 아니다.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만 잘 듣는 아이가 어디 있을까.
그 모든 투정과 장난조차도,
내겐 너무나 당연스뤄웠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는 잘 살지 못했거나
제대로 하지 못한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분명하다.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처음 이 아이를 안았을 때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어려움들까지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이와 함께 울고 웃으며,
때로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멈춰 서기도 하고,
내 마음이 부서지는 듯 아파도 다시 일어섰던 시간들.

그래서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이 기록들을 남기려 한다.
아이에게 다가올 앞으로의 남을 수술,

이후에 사춘기와 청소년기의 이야기까지
꼭 기록해두고 싶다.
아이의 웃음, 눈빛, 첫걸음, 첫 말,
그리고 내가 해주고 싶은 모든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먼 훗날,

이 아이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알게 되겠지.
아빠는 언제나 네 곁에 있었다는 것.
아빠는 언제나 너를 사랑했다는 것.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인생의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매일 아침, 나는 책에서 본 문장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는 내게 찾아온 손님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아이와 함께 걷는 길에서,
작은 손을 잡고 함께 뛰며,
사소한 것에도 웃음을 나누고
눈빛으로 마음을 전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 아이가 나에게 준 건 단순한 기쁨만이 아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세상의 따뜻함,
내가 잊고 있던 사랑과 인내,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다.

너를 만나서 아빠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어.

너의 존재가 아빠의 기적이었고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함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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