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같은 순간들, 그리고 오늘..

끝이 아닌, 이제 시작

by 제이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오늘', '지금'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아니 배우게 되었다.


1년, 2년… 그리고 어느새 5년.

그 여정을 함께 걸어온 시간들에

불안과 두려움, 분노와 미안함으로 가득했던 시간을 지나

현재는 평온하고, 감사한 오늘 앞에 서 있다.

꾸준히 성장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자라주었다.

비록 또래보다 체격은 작고,
겉모습에서 차이가 보이지만,
아직은 어린아이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이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늘 부끄러움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믿고 있지 못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아이를 믿어야 해!'


지금 우리는, 그 다름 속에서도

우리만의 속도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살아내고’ 있었다.

어린이집 단체 생황, 특정 수업 속에서,
세상과 맞닿는 경계선에 설 때마다
아이는 스스로 조금씩 깨달아 갔다.
다른 친구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그럼에도 아이는 본인에 대한 슬픔보다
엄마, 아빠와 함께한 추억들을 꺼내며
늘 웃음을 보여주었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투정 부리기보다는 상황을 바꾸어보려는 모습에
우리는 놀라곤 했다.

무엇보다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 서툴지 않았다.
언제나 서슴없이 엄마 아빠에게
마음을 털어놓던 아이.

“엄마, 난 키가 작지만 슬프지 않아.”

"오늘은 친구들이 작다고 놀려서 슬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숨기지 않고 속상한 일을 꺼내어 줘서

너무 고맙고, 기특했다.

무엇보다

'넌 나보다 훨씬 더 강하구나.

그래 잘 자라고 있구나..'

매번 아이를 보면 느끼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런 아이를 세상 밖으로 조금씩 소개하며,

아이의 사회성, 자신감, 자존감만큼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키워주고 싶었다.

솔직히 이것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아내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했다.

아이와 함께 어울리고,

세상을 보여주며,

함께 경험하며,
함께 웃고, 함께 놀아주는 것.
그 속에서 교감을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

아이 스스로 마음을 꺼내
서슴없이 말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

그렇게 해야만,
작은 상처가 빨리 아물고
다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길을 걷다 보면
장애를 가지거나 불편한 아이들,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느낀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희귀병들도 참 많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자신의 아픔을 크게 내색하지 않고,
표현하지도 못한 채
최소한으로만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마 아파서 아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픈 가운데서도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책임지며
묵묵히 하루를 견디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몰랐다.
그들이 세상과 사회에서
얼마나 큰 심리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이제는 내가 그 상황이 되었고

그 마음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런 사람들이 불편하게 있으면
망설임 없이 도와주게 되었다.
과하게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게,
그저 자연스럽게.

그리고 그 마음을
아이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었다.
아이가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는,
내 삶의 목표가 될 것이다.


나는 오늘, 이 글을 쓰면서

평생 숨기고 싶었던,
마치 주머니 깊숙이 넣어 감춰두고만 싶었던
나의 마음을.. 그리고 소중한 아이의 병명을 이렇게 꺼내 놓았다.

사실 글이 서툴러
그동안 내가 무엇을 썼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먼 훗날 이 아이가 살아가면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었을 때

매번 고비와 고난들을 이겨내길 바라며,
또 누구보다 자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며
세상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정말 충분할 것이다.


이제 1~2년 후면 아이는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길고 아픈 과정이 되겠지만,

행복과 슬픔이 공존하는 그날에도

나는 다시 그 감정을 기록하며

아이에게 전달해 줄 것이다.


늘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의심하며
부정적인 태도로 살아왔었다.
그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어쩌면 지금도 완전히 바뀌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이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또 이 아이와, 그리고 그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내 습관을 이어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세상에는 우리 아이보다 더 큰 아픔을 가진 아이들도 있고,
우리보다 훨씬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이제야 그 걸 알았기에,

감사와 긍정으로 이어가려 한다.

사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아이와 함께하며 배운 정서적 교감과 자존감,
그리고 끊임없이 전해지는 ‘사랑받고 있다’는 그 표현들이다.

그 따뜻한 순간들이
내 삶과 기억을 긍정으로 채워주었고,
무너질 뻔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결국, 이 모든 기록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다시 살게 만든
작은 기적의 조각들이다.


과거 나는 매번 다가오지도 않은 내일을 자꾸 상상하며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 차 있던 나를 깨워주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듯 시간을 흘려보냈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정작 잃어버리고 있던 것이 있다는 걸.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이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되찾게 되었다.

‘그냥 믿어야지.
아무 생각하지 않고,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믿어야지…’

아이는 단지 몸이 조금 불편할 뿐,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를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불확실한 미래’라는 내 두려움 때문에
이 아이의 내일을,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오늘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니
마음은 점점 평온해졌다.
불행이라 여겼던 삶,
지옥 같다고 믿었던 시간에서 벗어나
행복을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 위에는
욕심과 집착, 시기심과 경쟁심이
덕지덕지 쌓여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매달리는 대신,
온전히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려 한다.
그것이 내 삶을 온전히 사는 길이고,
또한 아이와 우리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마흔 살이 넘어 찾아온 아이는

나에게 행복과 고통,

그리고 조금씩 내게 인생을 가르쳐 주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삶을

아이를 통해서 배웠간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 -



에필로그 - 엄마가 너에게 쓴 편지


사랑하는 우리아기 무지개야..

엄마가 내사랑 무지개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쓰게 되는구나.

너의 태명인 무지개는 아빠의 친구가 꾼 너의 태몽에 무지개 두개가 있었다고해서 아빠가 무지개라고

지으셨단다.

어제 엄마,아빠는 우리 무지개를 보러 외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단다.

우리아가는 아주 이쁘게 잘 자라고 있었어.

근데 엄마,아빠에게 그리고 할머니에게 참 힌든 하루였단다.

너무나 소중한 우리 아가에게 선천적으로 조그마한 질병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앞으로 우리 아가를 낳아서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치료해줘야 하는지

병원에서 자세히 듣고왔거든.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엄마,아빠는 너무 놀랐고 힘들었지만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축복인 너를 앞으로 어떻게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해서 아빠와 함께 많은 얘기를 했단다.

엄마는 많이 울었다.

너에게 미안해서 그리고 아빠에게 또 가족들에게도..

엄마는 너를 만나게 될 두달후까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무지개가 태어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해볼 생각이야.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갖고, 잠도 잘자고, 클래식 음악도 많이 듣고, 아침마다 좋은 햇볕도 쬐고..

모든 노력을 해볼 생각이란다.

사랑하는 내 아가..

니가 언제나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만을 엄마는 간절히 원하고 기도한다.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며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지금만큼 엄마가 힘든적은 없었던것 같구나.

너의 모든 아픔과 힘듬을 내가 대신 해주고 싶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사람에게는 결핍이 있단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고, 외향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물질적인 걸수도 있지만..

너의 어떤 결핍이라도 최대한 채워줄 수 있도록 엄마,아빠는 늘 노력하고 널 아주 많이 사랑할꺼란다.

엄마,아빠는 서로 너무나 사랑하고 그래서 너와 같은 축복을 얻었단다.

서로의 사랑의 힘으로 힘든시간을 모두 견디어 내고 행복하고 사랑이 충만한 가족을 만들려고 노력중이란다.

앞으로 우리 무지개가 자라면서 어떤 일들이 생길지 엄마도 잘 모르겠지만 어떤일이든 늘 항상 엄마,아빠가 너의 옆에서 함께할꺼야.

너무나 사랑하고 그래서 미안하고 언제나 너를 위해서 너의 행복을 위해서 아빠,엄마는 최선을 다할께.

사랑하다, 우리아가


-

사랑하는 내 아가 무지개

아빠는 출근하셨고 지금쯤 열심히 일하고 계실꺼야...

이제 우리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는 날이 얼마 남지않았구나.

어제는 엄마가 배가 많이 나와서 숨쉬기가 좀 힘들었는데 아빠가 얼마나 속상해하고 엄마보다 힘들어 하던지..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면서 아빠에게 너무 고맙고 이렇게 엄마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아빠가 너무 사랑스럽단다.

엄마가 장담하는데 아빠는 우리 무지개에게 너무나 좋은 아빠가 될꺼라고 확신해.

이렇게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 엄마의 남편이라서 그리고 우리 무지개의 아빠라서 엄마는 너무 행복하구나.

우리 세가족 언제나 지금같은 맘으로 힘들어도 기쁜일이 있어서 늘 함께 행복하게 사는게 엄마, 아빠의 바램이며 다짐이야.

우리 아기.. 엄마는 기대가 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런맘이야.

모든지 처음이란건 이렇게 여러가지 맘이 공존하는가 보다.

그래도 우리 세가족은 앞으로 더 행복해 질꺼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을꺼 같아.

내사랑 무지개야.. 너무 사랑한다 내아가~

건강하고 행복한 너의 앞날을 위해서 엄마,아빠는 늘 네옆에 있을께.

모두가 널 사랑하고 널 축복하고 널 응원할꺼야..

사랑한다.


-

내딸 무지개야~

엄마는 이제 우리아가를 만날 준비를 시작했단다.

주변에서 선물받고 물려받은 옷들과 아기용품을 정리했단다.

너무나 작고 귀여운 옷들을 보면서 우리아기가 이 옷을 입으면 얼마나 이쁠가 생각하면서 엄마는 너무 감격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

너를 키우면서 어떤일들이 일어날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아기가 엄마,아빠에게 얼마나 큰 기쁨일지는 이미 알 것 같단다.

엄마는 니가 커가는걸 보면서 아마도 미안할때가 많을꺼 같구나.

여러가지로 부족한 엄마가 널 힘들게 하지 않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널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사랑이 충만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니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하면 상처받지않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직은 무섭고 걱정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동안 너무 일만했던 엄마라서 널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모든일이든 처음에는 힘들기 마련이고

그럴때마다 엄마는 잘 이겨냈단다.

이번에도 엄마는 힘들고 어려운 처음하는 일을 또 힘차고 현명하게 겪어내보려고 해.

그리고 이번에는 엄마 혼자가 아니라 늘 엄마와 무지개를 걱정하고 응원해주는 아빠가 곁에 있으니 훨씬 더 수월할꺼라 생각하고 있어.

우리 아기.. 너무 사랑한다.

엄마가 널 얼마나 많이 더 사랑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너무 많이 사랑한다.

널 만날날이 얼마 안남았구나..

얼마 남지않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서 좋은엄마가 되도록 너의 첫 세상살이가 조금은 편할 수 있도록 노력할께.

우리 곧 만나자.


-

내딸~~~~~

엄마는 월요일인 5월 25일 오전 9시 16분에 우리딸을 낳았단다.

예정일은 원래 6월 6일 이였는데, 재왕절개로 너를 낳게 되면서 이주 먼저 널 낳게 되었단다.

하루전 일요일에 입원해서 4박5일만인 목요일에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엄마는 아직 널 한번도 보지 못했단다.

우리 무지개가 태어나자마자 호흡이 불안정하다고 해서 넌 엄마 얼굴도 보지못하고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게 되었단다.

아빠만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널 잠깐 봤을뿐

엄마는 너를 낳은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네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널 안아보지도 못했단다.

엄마는 널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다가, 너무나 보고싶기도 했다가 네가 병원에 있으니 잘 있을꺼라 생각하다가..

이런저런 너무 많은 생각이 들기 일쑤란다.

우리딸.. 엄마가 너무 많이 보고싶다.

어서 널 보고 널 안고 너에게 말하고 너에게 사랑을 듬뿍 주고 싶구나.

아빠도 널 너무 보고싶어 하시고 가끔 니사진을 보며 눈물도 짓는다.

엄마는 언제쯤 널 볼 수 있을까..

매일매일 병원에서 연락을 기다리며, 니가 건강하단 소식을 듣기만을 마음졸인단다.

어제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우리아기가 몇일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엄마는 또 너한테 미안하고 우리아기가 너무 보고싶었단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우리 딸에게 엄마가 너무 많이 미안해.

하지만 우리가 만나게 되면 그동안 너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을 뜸뿍 주도록 할꺼야.

엄마,아빠를 위해서 조금만 힘내주렴.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널 보고싶다.. 내아가..

어서 건강하게 퇴원해서 엄마랑 만나자.

너무 사랑한다 내딸..

엄마가 많이 사랑해.


이전 09화너를 지키는 일, 나를 지키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