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장 멋진 5월의 여름

안녕, 만나서 반가워

by 제이

서로가 표현도 말도 하지 않았지만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시간이었다.
그날이 축복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만큼이나 두려운 날이라는 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은
진심으로 우리를 축하해 주었다.

“정말 잘 됐다!”
“드디어 아빠 되는 거네, 축하해.”
“요즘은 딸이 최고지."

그 말들은 감사했지만,
하지만 동시에,
참 멀게 느껴졌다.

내가 가진 나의 현실에서는
그 축복이 닿기엔
너무 어둡고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고마워, 잘 키워볼게.”

하고 농담처럼 웃어 넘기기도 했지만
그 말의 끝엔 늘 씁쓸한 침묵이 따라왔다.

나는 딸을 가진 아빠로서 다른 부모들과의 정상적인 공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대화 속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냥 낯설고, 창피했고, 씁쓸했고..

내가 보는 세상은 여전히 완벽해야 '축복'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간극을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고,

한참을 그렇게
외롭고 조용하게 축하를 받았다.


달력을 볼 때마다

출산일에 대한 남은 날짜가 기쁨이 아니라
아이에게도 산모에게도

처음 경험하는 나에겐 정말 시한폭탄 같았다.

그럼에도

밤이면 아내는
조용히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아기, 엄마는 너를 너무 사랑해.
괜찮을 거야.
엄마가 꼭 지켜줄게.”


아이가 태어나기 전날까지도
나는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아내가 조금만 배를 잡아도,
표정이 어두워도,
아내를 데리고 무조건 응급실부터 찾았다.

혹시라도,
뱃속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함이 먼저 앞섰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같은 긴장의 연속이었고,
또 매일 같은 기도를 했다.


햇살이 따뜻한 어느 5월의 성당.
나무들은 유난히 푸르고,
나뭇잎은 선명한 초록색이 마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바람도 그날따라 고요하게 불었다.

그 평온한 풍경들이
슬픔에 가라앉아 있던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조용히 다독여주었다.

출산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그저 버티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태교도, 용품도,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를 걱정과 눈물로 채워가던 어느 날,
오래전에 예약해 둔 사진관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도..
만삭 사진은 다 찍던데..”

아내는 반대했지만,

우리에게도

이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는 걸
남기고 싶었다.
잊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내를 겨우 설득해
사진관으로 데려갔다.

사진사들은 환한 미소를 요청했지만,
우리 얼굴에 웃음이 저절로 날 리 없었다.

아내는 힘겹게
작은 미소를 지었다.

힘든 시간을 버티면서도
그 아이를 향해지어 준 첫 미소였고,
그 순간만큼은 정말 ‘엄마’ 같아 보였다.


출산 하루 전날, 오후 2시.
우리는 병원에 입원했다.
드디어 아이를 만나기 위한 준비,
제왕절개 수술을 위한 사전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병실은 조용했고
창밖으로는 햇살이 가득했고,

병실에 누워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내일이면 우리 아기 만나는 거야?

고생했어 정말..

엄마도 아기도 얼마나 힘들까..”


나는 설렘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고,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불안도 함께 있었다.

우리는 아이의 상태를 알고 있었기에
남들처럼 순수한 기대만을 품을 수는 없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만나게 될
그 아이는 건강하게 나올 수 있을까.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혹시, 생각보다 더 힘든 상황이면 어쩌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수없이 많은 생각들과 수없이 많은 기도를 반복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야, 내일 우리 아기가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그 아이를 사랑하자.
끝까지..
내가 지켜줄 거야.”


정말 한숨도 잘 수 없었던 그 날들

출산일이 다가왔고 25일 오전 9시 30분.

아내는 수술실로 향했다.
나는 병실의 간이침대에 앉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두 손을 모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기도문만 계속해서 되뇌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다.

작은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나는 아이의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없었다.

분만실에서
곧바로 소아과 중환자실로 이동되는
그 찰나의 순간.
커다란 병원 침대 위
아주 작은 생명의 실루엣만이 보였다.

심장이 터질 듯 불안했고,
어쩔 줄 몰라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때 교수님이 다가오셨다.

“아버님, 여기서 뭐 하세요?"

고개를 들자

교수님이 웃고 계셨다.

교수님의 표정을 보니 다행이다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교수님은
"아이, 정말 잘 나왔어요.
태어나면 아기들 모두 중환자실 들어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말씀하시며 교수님이 직접 핸드폰으로

아기 사진을 몇 장 보여주셨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무너지고 있는 나약한 아빠에게

교수님은 안정을 주셨다.


아내는 회복실로 옮겨졌고
나는 아이도, 아내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로
하루를 보냈었다.

코로나 때문에
소아과 중환자실 면회는 불가능했고
아내와 나는 단 한 번도
아이를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회복이 된 아내는 퇴원을 해야 했다.
아이는 여전히 병원에 남아 있었다.

퇴원 전날에 마지막 회진하시는

교수님에게 나는 부탁했다.

“내일 퇴원인데,

아이 한 번만, 볼 수 있을까요?”

교수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고
간호사에게 말씀하셨다.

“아빠분만 5분만 허락해 주세요.”


중환자실 아기 면회를 위해
대기실에서 전용 복장을 갈아입었다.

하얀 가운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와 기계음이
내 심장을 먼저 얼게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아기를 처음 마주했다.


너무 작았다.
너무 여렸다.

작디작은 몸엔
수많은 센서와 호스가 꽂혀 있었고,
그 위로
투명한 튜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울음을 참지 못했다.

머리와 팔다리는
앙상하고 연약했다.
이 작은 생명이
그동안 얼마나 버텼을지,
그동안 어떤 싸움을 혼자 해왔을지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 안타까웠고,
너무 가여웠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그 5분, 단 5분 동안

나는 그 아이를 바라봤고,
그 짧은 순간 안에서
그동안 쌓였던 모든 걱정,
모든 슬픔, 모든 진단과 조건과 절망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모든 게 다 괜찮다고 느껴졌다.


“안녕? 아가야..

내 목소리 기억해?
아빠야.
고생했어. 정말...
그리고 아빠가 많이 미안해.”

그 말을 들었는지..
아기는 작게 몸을 꿈틀거렸고
나는 그 작은 반응에
벅차게 울음을 삼켰다.

눈, 코, 입, 귀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움직이는 작은 몸짓 하나하나를
눈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됐어. 이 정도면 됐어.
고마워. 정말 잘 와줬어..
아빠가 이제 다 할게..
잘살아보자..”


2주가 지나
드디어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기 일반실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퇴원 소식은 없었다.
우리는 매일 기다렸고
아내는 매일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를 그리워했다.

사진 몇 장이 간간이 도착했지만
그걸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3주 후,
전화를 받았다.

“이제 퇴원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몸은 마음도 지쳐 있었지만

기대와 설렘,
불안과 기쁨,
그리고 드디어 우리 품에 안기게 될
작은 아이에 대한 벅참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다음 날,

해가 뜨기도 전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몇 달 전,
그토록 무겁고 두려운 발걸음으로 찾았던 병원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오전 8시.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작은 바구니 하나를 안겨주었다.

그 안엔 조용히 자고 있던 아기가

엄마에게 가더니

그 작은 눈으로
엄마를 또렷이 바라보았다.

조용히, 아주 또렷하게.
수많은 기계와 호스,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
그 모든 것들을 지나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는
첫인사처럼.

아내도 아이의 눈을 보면서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잘 있었니..?
나야.. 엄마야..
내가 너 엄마야..”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순간들.

그토록 원하고 기다리던
우리 세 식구의 시작이었다.

우리 모두가 ‘진짜 집’으로 돌아왔다.

둘에서 셋이 된 가족.
이제는 아이가 함께 사는 집.


바깥은
한참이나 더운 5월의 끝자락이었지만,
그날따라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봄처럼 따뜻했다.

나무들은 더 진한 초록색으로
온 세상을 감싸고 있었고
우리의 마음도
서서히, 따뜻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부모가 된 계절.

어느 멋진 5월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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