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을 걷는 여자.
“나는 모든 작가들에게 남의 생활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만 하지 말고 자기 인생에 대한 소박하면서 진솔한 이야기도 들려주라고 부탁하고 싶다.”-헨리 데이비드 소로 , 월든 중에서.
이 한 줄이 좋아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세 번째 읽고 있다. 한번 읽은 책은 두 번 읽어본 적이 없는 나인데 내가 세 번째 같은 책을 읽고 있다니.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내가 내 스스로 찾아 끝까지 완독 했던 책은 단 두 권뿐이다. 그랬던 내가 소설책도 아니고 만화책도 아닌 세계문학전집에 나오는 인문학고전소설을 좋아하게 될 줄이야! 이 문장을 곱씹어 보면서 소로가 말하는 ‘나의 인생에 대한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이야기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2023년 이전에는 내 인생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만한 이야기는 우리 엄마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누구에게나 가슴 한 구석을 먹먹하게 만드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풀어내다 보면 내 감정이 과하게 섞이는 바람에 자칫 식상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기에 내 마음속 한편에 잠시 넣어둔다. 대신 매일 4시간을 걷는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소로가 살아있다면 이런 이야기에 조금은 흥미를 가져주었을 거라고 믿는다.
23년 여름, 나는 살려고 걸었다. 과거의 나를 옭아매던 패러다임을 건드려져서 밤새 잠을 못잔나날들 속들을 보내다 우울증 약까지 먹어가며 악으로 버텼다.
한번 머릿속의 생각들이 꼬리물기를 시작하면 엉켜버린 실뭉치가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었다. 몸을 아주 많이 힘들게 만들어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안의 본능의 끌림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전까지 몸을 쓰는 것이라면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운동을 못하기도 했고 매번 하는 체력장에서 맨 마지막 하는 오래 달리기는 단 한 번도 완주한 적이 없었으니 내가 얼마나 운동을 싫어했던 사람인지 짐작이 가능하실 것이다. 아, 딱 한번 완주를 했었다! 고3 마지막 체력장에서 어떤 생각이었는지 딱한 번은 완주해 보자 다짐하고 완주를 결심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운동장을 6바퀴를 뛰어야 하는데 어떠한 준비 없이 평소 한 바퀴도 뛰어보지 않았던 내가 운동장 6바퀴를 뛰려고 결심했다. 뛰고 걷고 ‘내가 이걸 뛰어서 뭐 하냐’ ‘그냥 하지 말고 편하게 쉴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지막쯤엔 나는 한 바퀴가 남았는데 완주를 끝낸 멋진 아이도 있었다.
결과는 완주! 기록은 꼴찌였다. 하지만 내 인생에 처음 경험한 운동에 대한 성공이었다!
처음 걷기를 시작했을 때, 이 정도면 꽤나 많이 걸었겠지 싶어 만보앱에 기록된 걸음수를 보면 5천 보언저리정도. 그때가 무더위가 시작되는 5월 무렵이었다.
걷기 위한 체력을 만들기 위해 태권 운영하는 시동생에게 부탁해서 기초체력을 기를 수 있는 운동도 같이 시작했다. 운동을 할 때 에어컨바람을 쐬면 땀구멍이 막혀서 땀이 제대로 배출이 안되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 태권도 도장을 다니며 정말 불타는 여름을 보냈다. 매일 꾸준히 걷고 몇 달간 체력을 기른 노력의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11월부터는 하루 4시간을 걸어도 거뜬한 강철체력으로 다시 태어났고, 몸무게도 20kg이나 감량했다. 하버드 대학의 건강출판물에서는 걷기가 뇌에서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수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어 기분을 개선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하는데 정말 맞다. 나는 3년 전부터 처방받아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걷기를 시작한 1년 만에 최소용량으로 줄였고 지금은 이틀에 한번 복용하고 있다. 전보다 상황이 나아진 것이 아니냐 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주변관계가 싹 다 정리되어 버렸다. 주변관계가 정리가 되어버렸지만 그 상황에 대한 내 안의 공포심은 걷기를 시작학기 전보다는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하루 4시간 걷기는 일 년이 지난 지금 나의 일상이 되었고 요즘도 매일 4시간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