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택 나는 흰색타일의 주방,
욕실장을 열면 차곡차곡 정돈된 수건이 기분을 좋게 해 주고,
해가 잘 드는 거실 한켠엔 시원하게 자라난 푸르른 반려식물이 있는 집.
인별그램에서 보았던 누군가의 예쁜 집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2020년 봄.
세입자가 나간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
집안 곳곳은 엉망징창이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들어오고 싶었지만,
이사 비용도 빠듯한 형편에 그럴 수 없었다.
남편과 둘이 입주 전 청소를 하고.
있는 가구를 다시 들여와 짐을 풀었다.
이사 후, 너무 더러워진 현관벽만 다 있다는 곳에서 벽지를 사 와 직접 붙였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그럴저럭 살아야만 했다.
사실, 이 집으로 다시 이사 오고 난 후 스트레스가 심했다.
빌라에 산다는 이유였을까. “사는 곳이 중요한 거 아시죠?“ 라는 무례한 발언을 시작으로,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악연도 만났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나는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었다.
멀리, 아주 멀리.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판단하지 못하는 곳에서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지난 몇 년을 욕실장이 망가진 채로 사용해 왔다.
경첩이 녹슬어 덜렁거리는 욕실문에는 투명테이프를 붙여 썼고,
선반을 고정하는 부분이 빠져 3단짜리 욕실장은 2단으로 썼다.
문을 열 때마다 수건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수건이 떨어지는 걸 막으려고,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커튼봉으로 선반 대신 고정해 사용했다. 보기에도, 쓰기에도 불편했지만 그렇게라도 써야 했다.
그렇게 그냥저냥 살았다.
그러다 작년 겨울, 우울증이 더 심하게 왔다.
알 수 없는 공포에 옴짝달싹 못한 채, 몇 시간이고 이불속에 누워 있었다.
설거지통에 그릇들이 쌓여갔다.
건조된 빨래는 개지 않은 채 방바닥에 쏟아 두었다.
입을 때마다 옷들을 뒤적이며 꺼냈다.
그렇게 온 집안에 쌓이는 먼지처럼, 나도 멈춰버렸다.
어느 날, 나의 상태에 대해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다
“약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나의 마음을 건드렸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 보자는 마음이 아주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인테리어를 다시 해보고 싶었지만, 여전히 형편은 빠듯하다.
그래서 셀프인테리어를 해볼까 많은 영상들과 자료들을 찾아봤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정리부터 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