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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은 Oct 03. 2021

주부라는 닉네임 말고 나를 위한 주방을 위하여!

살림만 하는 주부도 꿈이 있다.

 2살 아이 둘을 키우는 대한민국의 주부.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내 이름 대신 주부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아이들을 챙겨 어린이집에 보낸 후 집에 돌아오면 온갖 잡동사니로 널브러진 집이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그때 어디선가 '어서 와, 이제부터 청소 게임을 시작하지.'라는 변조된 목소리와 함께 청소의 시작을 알리는 빨간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청소를 하고 나면 밥도 해야 하고, 반찬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는데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 속을 쉬지 않고 도는 것처럼 나는 살림의 쳇바퀴를 쉴 새 없이 돌렸다.

매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살림의 쳇바퀴 중에서 주방은 가장 기본 욕구인 <식食>을 충족하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식구들의 <식食>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지만 내 이름이 아닌 주부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보내는 시간이기 때문에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쳇바퀴만 돌리고 있던 어느 날, 뜬금없이 굉장히 허무하면서도 두려운 감정이 내 안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할 것인지 따져 묻는 그 감정 앞에서 기억을 잃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치매노인처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무언가를 해야 만한다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에서 커져갔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물 없이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아마 그것은 주부로서의 내가 아닌 한 사람의 나로서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작은 물음에서 시작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는데
주부라는 닉네임도 버릴 수가 없어 타협점이 필요했고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주방일을 최대한 줄여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지였다.

예쁜 그릇들을 장식해놓는 뿌듯함보단,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 최소한의 정리만 할 수 있는 그런 주방을 만들고 싶었다. 우선 상하부장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먼지만 잔뜩 쌓여있는 그릇들을 식사 때 주로 사용하는 국그릇, 밥그릇 하나씩만 남기고 비워냈고, 컵도 개인당 하나씩 남겼다. 비워내기를 할 땐 버릴 것을 골라내는 것보단 꼭 필요한 것을 남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버릴 것을 골라내다 보면 언젠가 사용할 일이 생기겠지 하는 미련이 찾아와 버리려던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놓게 하기 때문이다.

많은 그릇들을 비워내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것들을 사용할 일이 한 번도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식사 후 바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컵도 두 개뿐이라 커피라도 타 마신 날이면 물을 마실수 없기 때문에 바로 씻어야 해서 귀찮을 때도 있지만 설거지 후 그릇을 건조대에 엎어놓고 마르면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선반 속 제자리에 놓으면 정리가 끝나기 때문에 정리하는 시간이 절반 이상 줄었고 줄어든 시간만큼 나의 시간이 마련되었기에 그 정도의 불편함 따윈 감수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친한 지인과 전화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요새 독서모임을 통해서 책도 읽고 브런치 당선이 되어서 글도 쓰고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라 하니 아이 둘을 키우면서 그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냐는 말을 들었다. 예전에 나였으면 아이 둘을 키우며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며 허무한 시간들을 보냈겠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며
불필요한 살림을 최대한 간소하게 줄이다 보니 그 모든 것이 가능했다.

 아이들이 다 자라 부모의 품을 떠날 때가 되면 엄마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는 것과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허무함 속에 갱년기를 맞아 우울증도 겪는다고 하는데 그건 그 기나긴 세월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잘 돌보지 않는데서 오는 슬픈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육아는 빛과 그림자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한때 나도 그렇게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닐까 살짝 걱정도 많이 했었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얻은 시간으로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잘 돌보고 있기에 빛이 있어서 더 선명해지는 그림자처럼 엄마로서의 역할을 할 때도 예전처럼 지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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