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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은 Dec 01. 2021

장미꽃 한 송이

엄마, 엄마는 뭐 제일 좋아해?

5월에 꽃잎이 가장 아름답게 피는 장미.

5월 중순쯤부터 피기 시작하는 장미는 5월 28일 엄마의 생일쯤 그 모습이 절정을 이루는데 마치 엄마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듯했다. 래서인지 엄마는 장미를 무척 좋아했다.


아빠는 엄마의 생일이면 아파트 담장에 핀 장미꽃을 한송이 꺾어다 생일선물이라고 주었다. 화원에서 장미꽃 한 다발 예쁘게 포장해서 사는  없었는데 그 장미꽃 한 송이에 소녀처럼 좋아하던 엄마였다.


돌이켜보니 나도 엄마의 생일 특별히 선물을 한 적이 없었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예쁘게 포장해서 생일이라는 걸 축하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한 일이었을 텐데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생일 종종 만나서 축하해주는 건 당연시했으면서  왜 엄마의 생일엔 그러지 못했을까.


엄마니까. 그런 걸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뭐라고 하지 않고 사이가 틀어질 일이 없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엄마였으니까 그랬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수목장을 치렀다. 어느 날 6살 아이가 할머니 무덤에는 언제가?라고 물어보았는데 '무덤'이라는 표현이 어딘가 모르게 껄끄러웠다. 그래서 무덤 대신 할머니 나무라고 설명했고 그 후부터 할머니 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종교적 예식을 갖추지는 않지만 엄마를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던 터라 삼우제(*장례를 치른 후, 삼일째가 되는 날)에 엄마를 모신 추모공원에 가기로 했고, 음식 준비를 위해 엄마가 좋아했던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준비를 하다가 남편이 물았다.

"장모님, 포도 좋아하시?"

"아, 맞다. 포도."


껍질을 까서 먹어야 하고 씨도 따로 뱉어야 해서 나는 포도를 좋아하지 않는데 엄마는 포도 좋아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마가 아프고 나서 그 좋아하는 포도를 자주 먹은 기억이 없다. 같이 살 때밥하기 귀찮 요리를 못해서 하는 요리마다 맛이 없던 터라  자주  배달음식을 시켜먹거나 사다 먹었는데, 그때 메뉴도 주로 내가 먹고 싶은 거나 딸아이가 잘 먹거나 하는 것들 위주였던 것 같다.


2018년 5월 엄마의 59번째 생일을 앞둔 며칠 전,

열만 내리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간 병원에서 폐렴 진단을 받고 저작능력도 급격히 나빠져서 콧줄을 하게 되었다.

폐렴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설명에 콧줄을 하기로 결정을 했지만 연습을 하면 콧줄을 빼고 입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면 미역국이라도 맛있게 끓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남은 생을 더 이상 입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어 미숫가루를 물에 탄 것 같이 생긴 것만코에 달린 기다란 줄에 넣어 식사를 대신해야만 했다. 미역국. 미역 한 줌만 있으면 끓여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국. 근사한 선물 하나 못했던 나는 엄마의 생일에 그 흔한 미역국 한 그릇 끓여주지 못하고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다.

 

가끔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이 몇 가지 생각난다.

몇 가지라고 해보았자 소고기 뭇국이, 오이지, 김, 꽁치 고추장조림, 고등어 무조림. 그때는 맛도 그저 그렇고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먹었었. 소고기 뭇국이나 김은 대충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겠는데 꽁치 고추장조림이나 고등어 무조림은 그 맛이 생각나지 않아 비슷하게조차 흉내 낼 수가 없다. 생선을 좋아하지 않아서 엄마가 밥숟갈에 생선살을 발라 양념을 찍어 얹어주면 그냥 삼켜버려서 인지 그 맛이 기억나질 않는다.

맛있다고 하지도, 잘 먹지도 않아놓고 이제 와서 그 맛이 그리운데  그 맛이 기억나지 않아 서글프다.


말랑카우, 포도, 초밥....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세보려 손가락을 접었는데 다섯 손가락을 다 접지 못했다. 30년 넘게 함께했는데 몰라도 너무 몰랐다. 엄마를 안 지 얼마 안 된 사위도 몇 마디 교류가 없었지만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는데 나는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까. 뭐가 그리 바빠서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몰랐을 수가 있었지. 너무 가까운 사이였기에 막연히 다 안다고 생각했다. 막상 아는 것도 하나도 없으면서. 함께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영원할 것 같았기에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던  무심함이 지금 나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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