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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은 Mar 06. 2022

뒤늦은 가약(佳約:아름다운 약속)

"엄마는 왜 하준이만 좋아해?"

요즘 들어 첫째가 자주 하는 말이다. 첫째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발달이 조금 느린 둘째를 조금 더 챙기다 보니 아직 어린아이 눈엔 동생만 예뻐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통해 아픈 엄마에게 자존심을 부렸던 내 모습을 보았다. 동생에게 질투를 느끼는 첫째 아이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와 동생은 3살 터울인데 어렸을 적 나 또한 엄마 아빠가 동생만 예뻐한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첫째 나이쯤되었을 때 놀이터에서 동생과 놀기 싫어 도망가다가 앞에 주차되어 있던 트럭을 보지 못하고 이마를 부딪혀 10 바늘 정도 꿰맨 적이 있다. 그 사건을 떠올려보니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 사랑받는 동생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적이 많았었던 것 같다.


어릴 적 감정이 내 마음 깊숙이 남아서였을까? 친정과 합가 하여 엄마의 병수발을 드는 동안 동생과 크고 작은 트러블이 많았다. 동생은 결혼 후 멀리 살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것들을 나 혼자 감당해야 했는데 거리가 멀어 자주는 못 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동생의 태도였다. 한 번은 오기로 한 전날, 아기가 감기에 걸렸다고 못 올라올 것처럼 이야기를 하더니 자신의 친구와 약속을 했던 터라 올라왔다면서 몇 달만 와서는 얼마 있지 않고 친구네로 가버렸다.


매일 엄마 병원에 가면 동생과 영상통화를 하는데 '얼굴을 닦아 줘야겠다.'부터 시작해서 코빼기도 안 비치고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를 두는 동생은 나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엄마는 자주 못 봐서인지 동생이 오는 날엔 매일 오는 나보다 더 반가워하는 거 같았고 아빠 역시 뭐가 그리 이쁜지 사사건건 동생만 챙기니 동생에 대한 미움의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던 듯하다.


지금은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은 일로 영상통화를 하며 큰소리가 났다. 그걸 들으신 병원 간호사분께서 내가 돌아갈 때 조용히 붙잡으시며 "엄마가 아파서 누워있는데, 이렇게 싸우면 말은 못 해서 그렇지 아주 많이 속상해하실 거야. 속상한 건 알지만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말해주시며 안아주셨는데 그때 동생과 싸우는 것이 '엄마를 속상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인식하기 시작 게 되었고 진지하게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당시 나의 입장에선 모두들 나의 노고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왜 힘들어하는 거냐고 하는 것 같았다. 때문에 자존감(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대신 자존심(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을 앞세웠던 것이다.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엄마가 병으로 약해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신감(어떤 일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 또한 없었기에 스스로 길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로 아픈 엄마를 위해서라도 동생과 싸우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노력은 했지만 제자리일 때가 많았 싸우지 않겠다고 해왔던 노력들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기때문이었다. '자존'은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것인데, 자존심과 자존감은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것에서는 동일하지만 '남에게 굽히느냐 굽히지 않느냐의 차이이다. 굽히는 것은 뜻, 주장, 지조 따위를 꺾고 남을 따르는 것인데 그것을 상대방에게 나를 낮추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인식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을 엄마를 영원히 떠나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삶의 모든 부분에서 자존심을 자존감으로 만들지는 못하고 있는데 아마 이 문제는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인생의 숙제인 것 같다.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 입관식.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불가능하지만 떠나보내기 전 그동안 못했던,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마음속에 담아놓은 이야기를 하며 작별인사를 한다. 입관식을 하는 장소에 들어가 잠을 자는 듯 눈을 감고 누워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고마웠다.', ' 사랑한다.', ' 고생했다.'라는 마음을 전달하는 말들을 전하며 한참을 눈물 속을 헤엄치다 나왔다.

동생과 함께 먼저 나와 문 앞 의자에 앉아 아빠와 남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불현듯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고 다급히 다시 들어가 펑펑 울며 마지막 말을 건넸다.

"이제 동생이랑 안 싸울게 미안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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